시가 너의 손을 잡아줄거야
주말 오후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읽을 책을 찾는다.
책과 책갈피 그리고 포스트잇을 챙긴다
제일 편한 옷을 입구
아무렇게 구겨져
책을 읽고 기억하고 싶은 곳에 포스트잇을 붙인다.
나는 자주 시집을 꺼내 든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시를 말한다.
큰 충격에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고민이 있을 때
삶이 참 퍽퍽하구나 느낄 때
시를 읽는다
시는 나에게 세상은 힘든 곳이며 그래도 살만한 곳이라고 말해준다. 모두가 힘들기에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삶이란 원래 허망하고 허무하며 고된 것이라 말한다. 그러니 그 외로움을 자연스럽게 여기라고 말한다.
그렇게 시를 읽고 나면 다시금 괜찮아지곤 한다
한때는 내가 시집을 읽는 것을 숨겼었다.
시를 좋아한다고 하며 대체로 놀란 반응이었고, 거짓말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거짓도 아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시를 읽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시집을 재빨리 숨겼다.
허나 다른 사람들의 그 비딱한 시선보다
내가 시를 통해 얻는 힘이 훨씬 컸기에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시집을 꺼내고 시를 좋아한다고 말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놀라는 반응은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내 주변을 돌아봐도 시를 읽거나 좋아한다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소설, 에세이의 베스트셀러는 시시때때로 바뀌는데, 시집 분야의 베스트셀러는 몇 년째 제자리다. 대형서점을 찾아가도 시집 코너는 협소하기 그지없다.
시를 왜 읽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유명한 시집을 읽어봤는데 이해도 안 가고 안 맞더라 그래서 읽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건 정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나도 시를 좋아하지만 모든 시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집만 읽곤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엔 많은 시인들이 있고 그중에 나와 맞는 시인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이를 처음부터 알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나 역시 지인의 선물로 시를 알게 되었으니 그 처음은 얼마나 힘들까 싶다.
시의 세계로 발을 들일 수 있도록
나의 작은 취향을 공유하려고 한다.
누구나 혼자라고 말하며 외로움을 말하는 '김재진 시인님'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뵈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붇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 넣고
떠나라.
자연의 아름다움과 작은 것의 소중함을 말하는 '이해인 수녀님'
길 위에서
오늘 하루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없어서는 아니 될
하나의
길이 된다
내게 잠시
환한 불 밝혀주는
사랑의 말들도
다른 이를 통해
내 안에 들어와
고드름으로 얼어붙는 슬픔도
일을 하다 겪게 되는
사소한 갈등과 고민
설명할 수 없는 오해도
살아갈수록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나 자신에 대한 무력함도
내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오늘도 몇 번이고
고개 끄덕이면서
빛을 그리워하는 나
어두울수록
눈물날수록
나는 더
걸음을 빨리 한다
꽃을 아끼고 사랑을 노래하는
'나태주 시인님'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슬퍼할 일을 마땅히 슬퍼하고
괴로워할 일을 마땅히 괴로워하는 사람
남의 앞에 섰을 때
교만하지 않고
남의 뒤에 섰을 때
비굴하지 않은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미워할 것을 마땅히 미워하고
사랑할 것을 마땅히 사랑하는
그저 보통의 사람.
나도 처음부터 시를 읽었던 건 아니다. 학창 시절, 문과임에도 언어 성적이 제일 좋지 못했다.
나는 소설을,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언어 성적은 시를 읽는데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님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시가 저자의 손을 떠나 순간,
독자의 것이 되고
읽는 사람에 따라 시의 의미는 달라진다.
힘들 때마다 손에 잡고 있던 시집들이 없었다면, 그 시절 나는 더 많이 아프고 오래 견뎌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시의 작지만 큰 힘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