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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Jan 11. 2017

책은 나에게 현실 그 자체

[책] 페미니즘의 도전_정희진

일과 가정이 뭐가 문제야?


회사에서 '경력단절이 된 인재'를 대상으로  '고객관리' 분야의 구인공고를 올렸다. 해당 구인공고에는 "일과 가정, 사랑과 일"이라는 내용으로 가정과 회사의 균형을 원하는 분들이 지원해달라고 했다.


해당 구인공고가 올리고 잠시 후 페이스북에서 어떤 분이 해당 구인공고에 대해서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요지는 여성이 일과 가정의 균형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구인공고에 하트가 떠다닌다는 것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회사 메신저 채널에 대해서 이 문제가 공론화되었다. 결국엔 해당 구인공고의 하트를 제거하고 내용 부분이 수정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당시 나는 이것을 왜 비난하는지, 회사 동료 몇 분들이 하는 이야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막연히 세상엔 다양한 의견이 있구나라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뭔가 내가 놓치고 있다고 느꼈고 알아봐야겠다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 동료들의 추천을 받아 읽은 책인 정희진 저자, 페미니즘의 도전이다.


페미니즘은 협상, 생존, 공존을 위한 운동이다.


이 책을 읽기 전 내가 느꼈던 페미니즘의 이미지는 매우 강하고 저항적이며 남성을 적으로 대치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협상, 생존, 공존을 위한 운동이다. 여성운동은 남자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남성의 세계관과 경험만을 보편적인 인간의 역사로 만드는 힘을 조금 상대화시키자는 것이다. 남성의 삶이 인간 경험의 일부이듯,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의 경험도 인간 역사의 일부임을 호소하는 것이다.

[책] 페미니즘의 도전 中                                                


이렇듯 페미니즘은 "남성과 싸우자!"가 아닌 "우리 같이 잘 살아보자"에 가깝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이미지는 페미니즘의 왜곡된 모습이었다.



남자는 울면 안 돼?


다시 돌아보면 나는 많은 성(차) 별적 발언을 들어오면 자랐다. 하지만,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고 너무나 당연하게 문화로 받아들였다. 단지 우리나라가 가부장적이니까, 그 회사가 보수적이니까, 로 그쳤다. 그래서 그런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여전히 이런 말들을 서슴없이 한다.


"남자가 울면 되느냐?"

"남자는 다치면서 크는거지!"

"여자는 감정적이기 때문에 남자가 판단을 잘해야지"

"여자가 무슨 그런 일을 해?"


이는 TV 속에서만 들었던 말은 아니다. 나 역시 했던 말이다. 친구들끼리도 뭔가 수다스럽게 말을 많이 하면 "아줌마 같다"라는 말을 하며 남자가 소극적으로 나온다면 "여성스럽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이러한 말들을 고치려고 노력 중이지만, 습관이 되어 나도 모르게 말할 때가 있다.


남성을 그렇게 해야지. 여성은 이렇게 해야지라고 규정짓는 말들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매우 폭력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난 느낌을 주며 각자의 개별성을 무시하는 발언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인 나의 입장에서 여자라고 해서 다 감정적인 건 아닌데? 소극적인 건 아닌데?라는 반발을 느끼게 하며 나의 역할을 타인이 제한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은행에서 느낀 보수적인 사회


모 은행에서 2개월간 인턴으로 일했던 적이 있다. 100: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들어갔지만, 인턴이 주로 하는 일은 하루 6시간 이상 서서 입구 앞에서 인사를 하고 고객들을 응대하는 일이었다. 당시 은행원을 꿈꿨기에 지점에서 일하고 멀리서나마 은행원들의 업무를 지켜볼 수 있어서 이것도 만족스러워했다.


내가 일했던 지점은 1층은 수신업무, 2층은 여신업무로 나뉘어있었다. 1층은 항상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고 찾아오는 고객의 70% 이상이 단순 이체나 통장 발급 등으로 찾아오는 분들이었다. 2층은 여신업무를 하는 곳으로 주로 대출을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업무는 여신 쪽의 업무로 은행에서 그나마 경력을 쌓을 수 있고 다양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업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층 수신 창구에는 10명 중 9명이 여자였지만, 2층 여신 창구에는 6명 중 1명만이 여자였다. 그 1분의 여자도 자리만 2층일 뿐 여신업무를 하는 분이 아니었다. 결국 해당 지점 여신 업무는 다 남자들이 하고 있었다.


나는 이 모습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지점장 경험이 있던 부장님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물어봤다.


나: "부장님 왜 2층 여신 창구에는 남자분들 밖에 없나요?"

부장님: "여신업무는 야근도 많고 사장님들과 술도 많이 마셔서 여자분들이 하기는 힘들지."

나: (?????????) "아 네.."


속마음으로는 물음표가 백만 개는 떠오르고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냥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은행의 문화는 이런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보수적인 문화가 이런 것이구나 단번에 이해되었다. 은행에서는 여자의 업무와 남자의 업무를 보이지 않게 구별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궁금했던 점은 은행 내에 있는 여자분의 탈의실 겸 쉬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여자들만의 위한 공간이 있으면 좋은 거 아니야?'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공간은 2평 남짓이려나 양쪽 벽은 옷장을 채워졌고 10명이 넘는 여자분들이 그곳에서 하루 2번씩 옷을 갈아입는다. 왜냐고? 여자 은행원들 중 차장 이하는 모두 유니폼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업무를 시작해서 유니폼을 벗어야 업무가 끝난다. 이에 이 2평 남짓한 공간은 여성들의 위한 공간이 아니라 유니폼을 갈아입기 위해 필요한 공간이며 유니폼이 여성들만 입기 때문에 여성들을 위한 공간처럼 보이는 것이다.


너무나 이해할 수 없었다. 유니폼을 입으려면 차장 이하 모든 은행원이 다 입던가 왜 여자 행원들만 입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궁금증을 일하고 있는 은행원들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무도 이 부분에 대해서 문제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물어도 왜 그런지 모를 거 같았다. 이후 기사를 찾아보고 유니폼에 대한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은행 측 입장은 고객에게 통일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해당 은행을 상징하는 색깔로 유니폼을 제작하여 행원들이 입는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통일된 모습을 왜 여성들에게만 강요하는지?


기사의 사례를 보자면, 여자 행원들은 그 유니폼을 갈아입기 위해 평소 출근시간보다 더 일찍 나오면 더 늦게 퇴근하게 된다고 했다. 또한 같은 직급, 같은 업무를 하는 여성 행원과 남성 행원이 있다면, 유니폼을 입은 여성보다는 정장을 입고 있는 남성이 더욱 전문적이여 보이기 때문에 어떤 고객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여성 행원이 아닌 남성 행원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은행의 통일성을 위해 만들었던 유니폼은 실제로 은행 내에서 여성과 남성을 차별하는 것뿐 아니라 고객 역시 은행원을 여성과 남성으로 나누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던 것이다.


이에 나는 2개월 인턴기간이 끝난 후 은행원의 꿈을 접었다. 이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보수적이라고 말하기도 약한 "은행의 차별적인 문화"에서 나는 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혼은 하고 싶지만, 아기를 원치 않는다.

여성은 어머니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남성 임금의 절반을 받고, 남성은 아버지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여성보다 더 많이 받는다. 잠재적 어머니로 분류되는 여성 노동자는 노동 시장 진입에서부터 임금, 승진에 이르기까지 '어머니냐, 노동자냐'라는 정체성을 택일할 것을 강요받거나, 택일하지 못할 바에야 둘 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

[책] 페미니즘의 도전 中         

                                                  

내가 지금 다니는 스타트업 회사는 우리나라 어느 회사보다 수평적이고 차별적 발언이 비난받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역시 나는 '어머니냐, 노동자냐'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등에 대해 명문화된 회사 규정이 없으며 사내에 선례조차 없기 때문이다.


일하는 여성이 출산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할 수 있기위해서는 남성도 여성과 동일하게 육아와 가사에 책임을 져야한다. 이에 회사에서도 여성과 남성에게 동일한 육아휴직기간을 보장해줘야한다. 허나 육아휴직 이야기를 꺼낸다는 자체가 눈치가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여성의 출산휴가가 보장되는 회사와 보장되지 않는 회사로 나뉘며 다시 여성의 출산휴가는 보장되지만, 남성의 육아휴직 유무로 나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남성의 육아휴직을 실질적으로 무리 없이 사용 가능한 곳이 있을까 싶다.) 부모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 보장되는 회사에 다니면 아기를 가질 수 있을까 싶지만, 2년을 보장해준다고 해도 아기가 2살인데 과연 회사에 나올 수 있을까? 사회뿐 아니라 가정 내에서도 어머니의 역할을 더욱 강요하기에 결국 많은 여성들은 회사를 다니지 못한다. 이를 우리는 '경력단절'이라 부른다. '경단녀' (경력단절 여성)이라는 말이 익숙하고 '경단남'(경력단절 남성)은 들어본 적이 없는 걸 보면, 경력 단절되는 쪽은 여성이다.


여러 갈래로 생각하고 고민해봐도 출산이 나의 경력을 단절시키고 나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개인적인 이유와 더불어 나의 경력이 단절되는 출산을 나는 원치 않는다.


이 책은 나에게 현실 그 자체, 역시나 현실은 불편한 것.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마음을 이렇게 잘 정리해주다니 너무나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또한 나의 미래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구나 생각하니 참 우울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좋은 책이지만 읽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져 손에 들고만 있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역시나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에 나는 계속 알고 싶다.

PS. 페미니즘에 관해서 혹은 더 넓게 우리 사회의 균열을 잘 보여주는 책이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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