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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Jan 31. 2017

나도 모르게 내가 한 일

[책] 그림자 노동의 역습


대가 없이 당신에게 떠넘겨진 보이진 않는 일들


우리 생활 속에 얼마나 많은 대가 없는 그 일들, 그림자 노동을 하고 있는지 알고 계신가요?


우리는 이미  ATM과 같은 키오스크를 자연스럽게 이용하며 패스트푸드점에서 자신이 직접 음식을 가져오고 치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허나 뿐만 아니라 생활 곳곳에서 우리는 나도 모르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그림자 노동: 길에서 보낸 3시간                                                                                                                                                                                                                                      

통근을 예로 들어 보자. 통근, 즉 일하러 가는 일은 고용주에게 이익이 되는 무급의 노동이다. 통근은 미국인의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 실체를 제대로 아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통근은 비용이 아주 많이 들고 시간까지 잡아먹는 그림자 노동이다.   

[책] 그림자 노동의 역습 中            


나의 출퇴근 시간은 3시간이다. 하루에 버스와 지하철 4번 혹은 5번을 타야 한다.



가끔은 퇴근시간만 2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게 바로 어제였다. 나는 보통 1호선 종각역에서 신창행이나 병점행 열차를 탄다. 내가 타야 하는 열차는 2대의 1대꼴로 도착하기에 종종 놓치곤 했고 어제도 역시 놓치고 말았다. 다음 신창행 열차를 기다릴까 하다가 갈아타는 게 낫겠다 싶어 바로 다음에 오는 인천행을 탔다. 그리고 시청역에서 2호선을 갈아탔다. 근데 이런... 이 열차는 신도림행이었다. 급히 타느라 어디행인지 확인을 못했다. 밤 시간이 가까울수록 신도림행이 많아지는 2호선이다. 어쩔 수 없이 그전에 내려 다음 열차를 탔고 대림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탔다. 그리고 몇 정거장 후 내려 집에 걸어갔다. 집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퇴근은 7시쯤 했는데 집엔 9시가 다 되어서 도착했다. 


고용주 입장에서 통근시간까지 근무시간에 포함시키라고 한다면 너무하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근로자인 나에게 교통비와 더불어 나의 시간과 체력까지 앗아가는 이 그림자 노동은 정말 너무하다. 내일이라도 당장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지만! 서울 한복판에 다달이 임대료를 내며 살아가자니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당분간 이 그림자 노동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그림자 노동: 편리한 선물, 기프트카드

                                                                 

사회적으로 기프트카드는 선물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다시 정의하고 그림자 노동을 발생시키는 일이다. 사랑하는 친척이나 친구에게 선물을 고르면서 크게 신경을 쓰고 많이 생각하고 배려하던 시절이 있었다. 기프트카드는 받는 사람이 어디서 물건을 구입하는지 아는 것 외에 받는 사람에 대한 배려를 거의 표현하지 않는다. 또한 기프트카드는 받는 사람에게 그림자 노동을 안긴다. 주는 사람이 시간 내서 선물을 사는 대신, 카드를 받은 사람에게 그 일을 안겨 준다.

[책] 그림자 노동의 역습 中      


언제부터일까, 나 역시 만나지 못하는 친구나 동료들에게 생일 축하한다면 편지 대신 기프트카드를 보내곤 했다. 이는 내 마음을 전하기에 쉽고 편리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기프트카드'가  손때 묻은 편지나 선물보다 정성이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기프트카드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기에 오히려 고맙게 생각한다. 이에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선물의 모습도 변하는 것이고 이 시대의 선물은 기프트카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허나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처럼, 기프트카드에도 차이가 있다.



아래 2개의 예시 중 어떤 게 더 맘에 드는가?




기프트카드 1번.




기프트카드 2번.




나는 기프트카드 2번이 훨씬 좋다.


1번은 금액 제한만 있어 나에게 많은 선택권이 주어진다. 이에 1번의 선물은 "내가 너에게 돈을 선물로 줄 테니 맘에 드는 걸로 사" 이런 느낌이다. 안 좋게 말하면 돈만 주고 마음이 없는 선물이다.


하지만 2번은 "네가 회사에서 아메리카노를 자주 마시는 거 같아서 내가 너에게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선물로 줄게."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거 같다. 물론 내가 아메리카노 말고 다른 것으로 바꿔서 사용할 수 있지만, 나는 '아메리카노'라는 선물을 받았기에 기꺼이 시간을 내서 선물을 직접 받으러 갈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세 번째 그림자 노동: 내가 만든 이케아 서랍장

                                                                               

실험 참가자들은 실용적인 제품이든 재미 삼아 만든 제품이든 미숙하나마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 전문가가 만든 것만큼이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똑같이 생각할 것으로 기대했다. 물건을 만드는 일은 사용자의 자부심과 능력을 높인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물건은 만든 사람의 전문성을 보여주는 훌륭한 전시품이 된다. 이케아 효과는 보람으로 가득 차 있다.

[책] 그림자 노동의 역습 中                                                       


방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한바탕 뒤집어 놓고 나니 서랍장이 필요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려니 언제 올지 몰라 답답했고 사러 나가자니 막상 어딜가야할지 고민이었다. 그때 생각난 곳은 이케아였다.



나는 광명에 살고 있고 차를 타고 바로 이케아로 갔다. 나에게 시간이 많지 않아서 바로 2층 쇼룸에서 원하는 서랍장을 골랐다. 2층 매장이 워낙 넓고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꽤나 돌아다녀야 했다. 고민 끝에 고른 서랍장의 상품명과 위치를 1층에 내려와서 찾았다. 1층은 거대한 창고와 같은 곳이었다. 박스로 쌓아져 있기에 내가 찾는 서랍장이 맞는지, 그 색깔이 맞는지는 몇 번을 확인한 후에 물건을 들고 계산대로 갔다. 계산 후 다시 물건을 들고 차에 실었다.



이렇게 내가 이케아에서 물건을 사는 동안 나를 도와준 이케아 직원은 주차안내요원과 계산대에 있는 직원뿐이었다. 상품을 고르고 찾고 나르는 일은 고객인 내가 했다.




이케아의 그림자 노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서랍장을 갖기 위해서는 만드는 과정도 내가 해야 한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3D여야 할 서랍장이 2D로 펼쳐져있을 때에 그 당혹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2D의 부속물들을 조립하고 도면을 이해하며 3시간 만에 감격스럽게도 서랍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인터넷에서 서랍장을 주문했다면 혹은 가구점에서 서랍장을 샀다면, 내가 '감격스럽다'라는 말을 쓸 수 있었을까?


아니다.


이케아는 나에게 재료만 주고 그에 수반된 노동을 고객인 내가 다 했음에도 나는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이유는 내가 직접 그 서랍장을 만들었다는 것에 있다. 내가 만들었기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서랍장이고 내가 만들었기에 그 어느 가구보다 이쁘게 보인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 많은 그림자 노동을 잊어버린 채 나는 기회가 있으면 또 이케아에 갈 것이다.




생각해보세요. 당신도 모르게 당신이 한 일을! 생각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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