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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Jun 06. 2017

여성을 넘어 모두를 위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책] 나의 페미니즘 레시피

유독 집으로 가는 길이 낯설던 그 날



2017년 6월 5일 호식이 두 마리 치킨 회장 성추행 기사를 읽었다. 당시 나는 밤 11시경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은 짙었고 거리에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괜스레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주위를 이전보다 더욱 경계했다.


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서 내렸다. 버스 정류장과 집과의 거리는 걸어서 10분 정도이다. 하루에도 2번 이상 지나가는 곳이기에 눈 감고도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유독 집에 가는 길이 낯설었다. 뒤를 몇 번을 돌아보며 주위를 살폈다. 안 그래도 빠른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성희롱, 성폭행 이슈 기사를 보는 날이면 나는 항상 이렇게 불안해진다.

내가 왜 이래야 하는가?

왜 여성들은 밤늦게 다니는 걸 두려워해야 하는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여성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나는 여전히 늦은 밤거리에 다니는 걸 편하게 여기지 않으며 일주일에도 여러 번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기사들을 접한다. 짧은 치마를 입기를 피하고 거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경계한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고 싶은 그런 세상 속에도 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분들이 존재한다. '나의 페미니즘 레시피'는 모두를 위해 노력하는 페미니스트 15인들의 '현장'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하 글은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많은 생각을 주었던 부분을 발췌하여 정리한 것이다. 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15분의 이야기가 모두 담긴 해당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편협한 이념이 아니다.
여성주의는 여성의 시각에서 역사 사회 문화를 분석하는 것이지만 이는 가족, 사회, 나아가 다른 생명체 및 생태계와 어떤 관계를 구성하는가 하는 질문들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다. 따라서 여성주의가 성별에만 관심을 두는, 특히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편협한 이념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있다면 여성주의를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이 인권에 대한 믿음이듯, 여성도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존재라는 믿음이 여성주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주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뜻도 된다.

- 장필화(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교수, 아시아여성학센터 소장)


위 글은 책 속에서 페미니즘, 여성주의를 잘 정리하는 글이다. 이 글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한 후 아래 글을 읽기를 바란다.




평등한 공공정책을 만드는 '성 주류화'정책


성평등 사회의 실현을 위해서는 성별 분업이 고착화된 사회에서 변화해야 할 대상이 여성만이 아닌 남녀 모두를 포괄해야 한다는 인식으로부터 '성 주류화'라는 개념이 등장하였다. 즉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공정책을 성 인지적인 관점에서 분석하여, 성차별적인 젠더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 정책에 반영하자는 것이다.

- 김경희(한국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것이 바로 '성 주류화'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성 주류화'의 분석 도구라 할 수 있는 성별 영향 분석평가와 성인지 예산제도가 제도화되었다고 한다. 근데 왜 이렇게 생소할까 싶지만, 자세한 설명을 더 들어보자.


'성 주류화'정책은 장애인정책, 노인일자리사업, 공공시설개선사업 등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한 정책을 포괄한다. 분석의 핵심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성별로 구성된 젠더 관계이다. 즉 '성 주류화'는 젠더를 고려하지 않았던 공공정책을 성 인지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평가한 결과를 정책 개선에 반영해서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전략이고, 남성 중심의 주류 사회를 변혁하는 것이다.

- 김경희(한국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정책에도 성별로 인해 차별이 있었고 김경희 연구원님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성별 영향 분석평가와 성인지 예산제도를 법률로 제정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하였고 그것이 잘 작동하도록 최선을 다한 분이다.


이해는 가지만 와 닿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책에서도 언급했던 '사례집'을 찾아보았다. 100가지의 사례를 다 꼼꼼히 읽지 못했지만, 확실히 사례로 보니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읽었던 사례 일부를 아래 정리해보았다.


사례 1
문제 발견: 장애인 직업능력개발 훈련 과정에 여성 장애인의 참여율이 낮음
개선방안: 여성 장애인 훈련실적을 평가지표에 반영
성과: 민간 훈련 기관 여성장애인 참여 비율 개선 (35% > 37%)

사례 2
문제 발견: 도립직업전문학교에서 여학생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교과과정이 제한적임
개선방안: 교육담당자의 성인지 교육 참가 의무화, 여성친화적 직무와 관련된 취업 프로그램 개발 및 선정 예정

사례 3
문제 발견: 재취업 지원사업 신청자 대비 선발 비율이 여성이 낮지만, 관련 요인 파악이 어려움
개선방안: 계획서, 만족도 조사 등의 성별통계 생산 통한 성별 참여율 및 만족도 차이 파악/ 세대주 및 여성가장에 대한 가산점 적용
성과: 여성참여 비율 상승 (17% > 25%)

사례 4
문제 발견: 환경 미화원 채용 및 근무에 있어서 양성을 고려한 정책 마련되지 않음
개선방안: 강북구 환경미화원 고용 및 근무규칙 채용 방법 개정/ 현대화된 장비 구입을 통해 여성 환경미화원을 포함하여 야성 모두가 용이하게 작업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조성

사례 5
문제 발견: 가족지원 프로그램이 주로 평일 낮에 운영되어 (평일 낮에 근무하는) 남성의 참여가 어려움
개선방안: 프로그램 시간 다양화, 프로그램 다양화
성과: 남성의 적극적 참여 유도, 양성 평등한 가족문화

사례 6
문제 발견: 안전에 대한 여성들의 불안감 높음, 야간 보행이 두려움(여성 55.5%, 남성 29.1%)
개선방안: 범죄예방설계(CPTED) 기준 강화, 안전한 가로환경 조성 지침

사례 7
문제 발견: 성인 남성의 평균 신장을 고려하여 제작된 지하철 손잡이
개선방안: 5-8호선 객차마다 157cm 손잡이 16개씩 설치/ 1-4호선 신형 전동차 노약 좌석 앞 모든 손잡이 높이 낮춤

사례 8
문제 발견: 마곡지구 도시개발이 기존의 남성 중심으로 이뤄짐
개선방안: 성평등 추진사항 24개 항목 반영

사례 9
문제 발견: 공공시설에 아동을 동행하는 부모 모두를 고려하지 못한 기존 화장실 편의시설
개선방안: 남자 화장실 내 아기 기저귀 교환대 설치

사례 10
문제 발견: 일부 지자체의 의용 소방대 운영 관련 조례 내 여성의 하의를 치마로 제한하는 성차별적인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음
개선방안: 의용소방대 설치 표준 조례(안) 개정 시 여성의용 소방대의 하의를 '치마 또는 바지'로 수정하여 반영함


국민들을 위한 정책에 크고 작은 차별적인 요소들이 포함되어있었고 '성별 영향 분석평가' 덕분에 이것들의 문제가 발견되고 개선할 수 있었다. 개선방안이나 성과를 보면 엄청난 변화가 아니라 느낄 수 있지만, 이렇게 계속 정책을 평가하고 개선해나가면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이 되리라는 건 확실하다.




여성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여성


성폭력, 성매매 등 사회적 이슈들이 불거질수록 오히려 여성들의 행동반경이 제한되고 위축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회적 문제들, 특히 성과 관련된 대책들은 '통제'와 민감하게 연동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연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통제하고 제한할 것인가는 현실적이고도 정치적인 사안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성별이나 계급 등이 민감하게 작동하기 마련이다. 성폭력이 이슈화되면서 여성들은 옷차림, 밤길이나 술자리 피하기 등 행동거지를 더욱 조심하도록 강요받는다.

- 원미혜(서울시 늘 푸른 여성지원센터 소장)


우리 사회는 성폭력 사건의 주로 피해자가 되는 여성을 통제하고 제한하는 사회이다. 성희롱, 성폭력 기사를 보고 내가 스스로를 가두는 모습을 보면 이는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무엇을 강요했는지 알 수 있다.


여자가 밤길에 다니면 위험한 나라, 노출을 한 여성이 범죄를 유발했다고 말하는 사람들


성폭력을 없애기 위해 여성의 야간 통금시간을 정해야 한다는 발상만큼이나, 원정 성매매를 막기 위해 여성의 출입국을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며 통제이다. 그 자체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 원미혜(서울시 늘 푸른 여성지원센터 소장)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 천지다. 우리는 밤길에 여성들이 다니기 위험하게 한 사람들, 사회를 비난해야 한다.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해야 하며 확실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무엇보다 성폭력은 '성욕'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한 남녀관계' 때문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이에 일상에서도 무심코 할 수 있는 성폭력적인 언행을 모두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여성이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것이 사회 진보의 주요 기준이라고 믿는다. 또한 여성이 존중받을 때 비로소 사회 전체가 모든 소수자, 소외된 자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상태와 가장 근접할 수 있음을 믿는다. 이 땅의 여성이 좀 더 인간답게, 좀 더 존중받으면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현장에 들어가 일하면서 우리는 사회 변화란 인간의 머리로 예견할 수 있거나 인간의 힘만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닌, 좀 더 복잡하고 때로는 신비한 과정이기도 함을 깨닫는다.

- 장필화(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교수, 아시아여성학센터 소장)



책을 읽으며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우선 나는 나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목소리를 더욱 키우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것의 일환으로 이렇게 가끔 글을 쓸 것이다. 부족하지만 글로써 사회의 이면과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전달할 것이다.


이렇게 정리한 글을 나의 아버지에게, 나의 친구에게 보내줄 것이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이를 알리고 계속 알릴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하도록 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할 것이다.


아직도 정말 바뀌어야 할 것이 많은 세상이다. 우리 집만 봐도 갈길이 참 멀다. 부모님 두 분 다 일을 하시지만 유독 어머니만 가정일을 더욱 신경 쓰고 책임진다. 아버지의 조상들에게 우리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들이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한다. 이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우리 집부터 바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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