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기질 이기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by 작가 안나
어제도 둘째에게 화를 냈습니다.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가고 싶었죠. 선선한 가을바람에 바람막이 하나 입고 가족끼리 두런두런 걷다 보면 운동도 되고 오늘 하루 스트레스도 말끔히 씻겨 내려가니까요.


나가자! 한 마디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옷을 입습니다. 집을 나서기 전까진 좋았는데 갑자기 둘째가 인형을 들고 가겠답니다. 그리고 킥보드를 타겠다네요. 인형을 들고 킥보드를 타면 위험하기에 둘 중에 하나만 해야 한다고 말했더니 인형을 선택해 버렸습니다.


킥보드를 타면 멀찌감치 떨어져 저희보다 앞서가니 남편과 편하게 대화 나눌 수 있어 참 좋은데, 아쉬운 마음을 숨긴 채 '그래, 알았어' 라며 산책을 나섰습니다.


고집을 부려 가져온 인형이지만 걷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던 거죠. 인형이 무거워. 들어줘. 다리가 아파. 집에서 300m도 가기 전에 둘째의 짜증이 시작됐습니다. 어려서 그런 건지 아무 말 않고 조용히 우리 곁을 따르는 첫째와 달리 둘째는 우리 집에서 가장 말이 많고, 탈이 많은 생명체입니다.


화면 캡처 2025-09-29 090612.png 먹을 때 빼고는 주로 말을 하죠


"세은아, 귀가 아파"

"세은아, 그만 말해"

"세은아, 같은 말 반복하지 마"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우리 부부는 세은이의 쿵쿵거림과 높은 목소리를 힘겨워합니다. 문장으로만 보면 아이한테 저렇게 차갑게 말할까 싶겠지만 우리 부부가 세은이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인 것 같아요. 조용한 여유를 좋아하는 부부에게 활기와 애교가 넘치는 세은이는 언제나 '과한' 존재였습니다.


만약 제가 조용하고 반듯한 첫째만 키웠더라면 세상의 다양한 기질을 가진 아이들을 함부로 판단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같은 교육 환경, 같은 훈육에도 불구하고 정 반대의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둘째는 첫째와 다른 아이로 커갔습니다.


화면 캡처 2025-09-29 090844.png 오늘은 머리띠를 이렇게 해보고 싶은 기분이에요


그러니 별난 아이들을 보며 부모가 훈육을 잘못해서 그렇다고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거둬주시길 바라요. 저는 세은이를 보면서 'TV에 나오는 개그맨들은 어릴 때 얼마나 개구쟁이였겠어' '얼마나 가만히 못 앉아있고 온갖 장난을 쳤겠어' 그런 개구쟁이들이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멋진 어른들이 되었잖아 라며. 저 스스로를 위로하고 세은이를 이해해 보려 노력합니다.


물론, 산책 시작한 지 5분 만에 "집에 가! 너는 오는 내내 짜증이야!"라고 소리 지르고 돌아오긴 했지만요.

세은이도 이해해야 하지만 그릇이 작은 저도 이해해 주길 바라며. 부족한 엄마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어느 순간 아이 기질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포기하게 되더군요.

모든 성향에는 좋고 나쁨이 없고, 다른 점만 있다잖아요.


첫째는 조용하지만 친구가 많지 않고, 둘째는 말이 많지만 유치원에서 나름 인싸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지만 체력은 둘째가 훨씬 좋죠. 인생에 그리는 모든 그림의 절반 이상이 무지개인 무지개 사랑파 세은이는 성격만큼이나 알록달록한 것을 좋아하는 화가를 꿈꾸는 어린이입니다. 최근에는 축구를 배우면서 '그림 잘 그리는 축구 선생님'이 꿈이 된 세은이죠.


화면 캡처 2025-09-22 093117.png 그림 그릴 때 가장 행복한 박세은입니다


세은이를 보면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이 생각납니다. 예비 아티스트답게 양말은 짝짝이로 신는 걸 좋아하고, 어제는 인생 최초로 신발도 짝짝이로 신었습니다.


세은이 덕분에 우리 가족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거겠죠?

아이의 기질을 소화해 내는 건 제 능력 밖의 일이지만, 적어도 이 기질을 이기려고 덤비진 않습니다. 제가 회식자리를 두려워하는 내향형 인간인 것처럼 세은이 마음속에 통통 튀는 불꽃놀이가 열리고 있다면 그 불꽃을 끄려고 노력하기보다 예쁘다고 함박웃음 지어주는 엄마가 되어보렵니다.



안녕하세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처음 글을 쓰게 된 작가 <안나> 입니다.

한 때는 세은이를 너무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서 애착이 부족한가, 불안이 있어서 그런 건가 싶어 전문가에게 기질 검사 상담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결과는 다행히도 정상이었고, 단지 세은이는 우리 부부의 초자극추구 성향을 1+1으로 올곧이 받은 아이라고 설명해 주시더군요.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매는 세은이는 언제나 통통 튀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라고요. 마음을 쓸어내리며 그저 세은이를 인정해 주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세은이와 있다 보니 예민한 아이를 다루는 법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짜증을 계속 내는데 훈육도 안 먹힐 마음 상태라면 내 심장을 세은이 심장과 이어지도록 가슴을 맞대고 꼭 안아줍니다. 짜증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스스로도 얼마나 짜증이 날까 싶은 마음에 하는 엄마의 손길이죠.

그리고 핸드폰을 보면서 아이 곁에 앉아 있는 상황은 되도록 안 만들려 합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차라리 노트북을 켜고 엄마 검색할 게 있어. 일 해야해. 라고 말하고 놀아줄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괜히 핸드폰을 보게 되면 내 눈은 핸드폰으로, 아이 눈은 저를 향하는 이상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아이는 핸드폰에게 엄마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불필요한 말을 반복하죠.
핸드폰을 보지 말고, 아이 눈을 보자고 스스로 다짐하며 On/Off를 하는 편입니다.


너무나 어렵지만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그렇다며, 오늘 하루를 저도 버텨봅니다. 그럼 오늘도 아이와 웃고 울며 하루를 버텨내는 저와 같은 엄마 아빠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는 마음을 전하며, 다음 연재 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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