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15평에서 신혼을 시작했습니다.
결혼준비를 하면서 친정과 시댁의 도움을 받기 전에 우리 돈을 먼저 합쳐버렸죠. 혼수는 신부가 하고, 집은 신랑이 하고, 우리가 함께 살 집인데 남자가 이만큼 해야 한다. 여자가 이 정도를 해야 한다며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결혼, 우리의 집, 우리의 살림과 결혼식에 오실 분들을 위한 음식들. 누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결정하고 싶었죠. 그렇게 0촌이 되기 전 가진 돈을 하나의 통장에 합쳤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집 재정 관리는 아내인 제가 맡고 있습니다.
투자에 능하지 않지만, 저축에 능한 아내
절약에 능하지 않지만, 아내 의견을 잘 들어주는 남편
그렇게 우리는 최대한 빚을 지지 않는 선에서 15평 전셋집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조금 있는 빚도 빠르게 갚을 수 있었죠. 결혼 8년 차인 지금은 후배들에게 밥 한 끼 걱정 없이 사줄 수 있게 되었지만 결혼 초에는 이른바 예쁜 궁상을 많이도 떨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마냥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저는 참 아이들 옷을 안 사주는 엄마였더라구요. 첫째를 낳기 전 2살 터울인 사촌 언니가 옷을 박스로 물려주셨고, 물려 입는 걸 싫어하지 않는 저라고 소문이 났는지 여기저기서 아이들 옷과 신발을 보내주셨습니다.
화려하게 예쁜 옷은 없었지만 언니들이 입었던 옷들은 야들야들 부드러워 신생아에겐 오히려 좋았고 각자 취향이 다른 언니들이 주는 옷 박스에서 알록달록 예쁜 옷이 나타날 때면 복권에 당첨된 것 마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가끔은 할머니가 옷을 사주시기도 하고, 집에 놀러 오는 지인들이 옷을 선물해주시기도 해서 사실상 두 돌이 되기 전까지 아이들 옷을 살 필요가 없었던 거죠. 아이들 분유값에 기저귀 정도. 그 외에 유모차나 젖병소독기, 보행기와 점퍼루까지. 모든 물건들을 당근에서 중고로 구매했습니다. 아직까지 아이들 새책을 사줘 본 적이 없고 요즘은 아름다운가게에서 아이들 옷을 주로 사줍니다.
집이 좁아 아기 침대를 들여놓을 수 없던 시절. 남편이 총각 때 쓰던 책상 위에, 아이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 사진을 보고 저희 엄마가 눈물 지었다는 후문이 있죠. 하하.
그렇게 저는 알뜰살뜰한 아내에서 지지리 궁상 아내 사이 어딘가를 아슬아슬 넘나들었습니다. 딱히 돈을 많이 모아서 비싼 물건을 사고 싶었던 것도, 부자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부모님께 물려받은 절약 정신과 아이들 옷이 좀 커도 개의치 않는 무던한 성격 덕분에 차곡차곡 돈을 모아갈 수 있었죠.
다행히 이런 저를 남편은 지지해 주고, 고마워했습니다.
제가 집중했던 건 자산을 쌓는 것보다 매달 고정된 생활비를 줄이는 데에 있었습니다. 대출을 포함해 매달 나가야 하는 고정비가 크면 클수록 우리 부부에게 자유가 없어질 거라고 직감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차는 무조건 현금으로 사고, 집을 옮길 때면 대출을 최소화할 방향으로 결정했습니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데, 매달 나가는 고정비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현실
하고 싶은 공부가 있는데, 맞벌이를 포기할 수 없는 현실보다
현금을 가지고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자유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10년이 넘은 자연관찰책 전집을 5천 원에 사며, 자연은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며 능청스럽게 굴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돗자리를 깔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피크닉을 즐기는 우리 부부는 지금도 아끼며 살지만, 좋아하는 것과 낭만, 주변 지인들에겐 넉넉한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처음 글을 쓰게 된 작가 <안나> 입니다.
돈 때문에 아이 키우기 겁난다는 분들에게 제 삶을 강요할 순 없지만, 생각보다 적은 돈으로 육아하는 특이한 엄마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었어요 :)
지인에게 옷을 받으면, 럭키박스를 받은 것 마냥 구경하는 재미가 좋았고, 첫째는 1만 원짜리 중고 전집을 2년 넘게 보아왔어요. 이렇게 살아도 맑고, 밝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제 가치관에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답니다.
처음 결혼할 때 침대, 냉장고, 식탁 외에는 모두 남편이 자취 때 쓰던 물건을 가져와 우리가 어떤 살림살이가 필요한지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수년간 남편이 썼던 빨간 밥솥을 결혼 2년 차에 버리고 새로 사면서 우리 살림살이는 낭비 없이 가장 최선의 결정으로 다가갔어요.
그렇게 저희는 물건이 주는 행복 보다 아이들의 맑음이 주는 행복에 취해 오늘도 살아갑니다.
그럼 오늘도 아이와 웃고 울며 하루를 버텨내는 저와 같은 엄마 아빠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는 마음을 전하며, 다음 연재 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