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것은 아마도 물에 빠진 사람이 제 손에 잡히는 건 뭐든 잡아당기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핸드폰을 열어 연락처를 뒤졌다. 그러나 그중 어디에도, 이 시간에 전화를 해 내가 지금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털어놓아도 되는 곳은 없었다. 일부는 이미 오래전에 서먹해진 사이, 일부는 이런 식으로 바닥을 까고 매달릴 자신이 없는 사이, 일부는 저들에게 내 짐까지 얹어주고 싶지 않은 그런 사이.
포탈에 '자살'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했다. 정말 자살하려고가 아니라, 그 아래 뜨는 전화번호를 보기 위해서. 나는 안다. 내 겁많음을 안다. 옥상에 올라가서 몸을 던지거나, 욕실에 있는 면도칼로 손목을 그을 용기조차 없는 나를 안다. 그래서 감히 자살 같은 건 하지 못할 것을 안다. 그러나 그래도 심장이 으깨지는 듯한 이 순간의 고통만큼은 진짜이기에, 그중 한 군데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다. 모든 상담원이 상담 중이라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메시지만 서너 차례, 결국 전화는 연결되지 못하고 끊어져 버린다. 잠시 머리가 멍해진다. 토요일 새벽 세 시. 이 시간에도 이렇게나 생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울부짖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구나.
다른 번호로 전화를 한다. 나오는 ARS 안내음과 음악이 조금 다를 뿐, 모든 상담원이 상담 중이라 통화가 끝나는 대로 연결하겠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과정이 비슷하게 흘러간다. 이번에도 통화는 연결되지 않는다. 한 편으로 측은하고, 한편으로 화가 난다. 아마도 지금의 나처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만 생각해 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가 연결되지 않은 전화 앞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로 발길을 돌린 사람이 몇이고 있었으리라.
반쯤은 으깨진 머리로 생각해도 내가 청소년은 아니어서 청소년 전용 전화라는 번호 하나만을 남기고 돌아가며 30분 이상 전화를 걸어보지만 아무 데서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들을 탓하고 싶진 않다. 그들 또한 편안한 집에서 숙면에 들었어야 할 새벽을 쪼개 생을 놓고 싶다, 혹은 놓아야 한다는 절박에 몰린 사람들에게 마지막 손을 뻗느라 사투 중일 테니까. 그러나 그런 그들의 사정과는 별개로, 나 또한 누군가에게 지금 내 가슴을 짓누르는 무언가를 털어놓지 않고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여기저기 전화를 돌린다.
그러다가 1336이라는 낯선 번호를 발견한다. 긴급 여성의 전화라고 한다. 딱히 자살 예방 전화는 아닌 것 같고 궁지에 몰린 여성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번호라는 것 같았다. 내 인내심은 이쯤에서 허물어졌다. 신호가 몇 번 울리고, 그 새벽 처음으로 듣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새벽에 수고하십니다, 하고 말라비틀어진 목소리로 운을 뗐다. 상대는 오히려 당황하는 것 같더니, 고맙습니다, 하고 작게 답례를 해온다. 경상도 억양, 나이는 아마도, 내게는 이모 뻘 정도가 될 듯한 목소리. 마스크에 가려진 탓일까 목소리가 아주 또렷하게는 들리지 않는다. 그에게, 내 목소리도 차라리 그렇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