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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편이었다. 하는 일의 특성상 우리는 밤늦게까지 깨어 있을 때가 많았고 일을 마무리하고 자리에 눕고도 밀린 드라마나 예능 등을 보느라 잠드는 건 새벽 두세 시가 넘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면 배는 고프고 그래서 저녁이고 새벽이고 뭔가를 자꾸 주워 먹게 되곤 했다. 그도 나도 소위 날씬한 편에서는 한참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거기엔 아마 그런 이유가 컸을 것이다.
그가 떠나고 난 후 내 일상이 가장 크게 변한 부분은 수면시간과 기상시간일 것이다. 요즘 나는 어지간해서는 여섯 시 반 이후까지 침대에 누워있지 못한다. 반 강제로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게 되니 그에 따라 하루의 흐름이 조금씩 앞당겨졌다. 그리고 그 결과로 예전에는 극도로 피곤해야만 있을 수 있었던 일인데 밤 11시쯤이 되면 슬금슬금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침대에 누워 잠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열두 시가 되기 전 대부분 잠든다. 나는 내가 이런 새나라의 어린이스러운 생활패턴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수면 시간이 당겨지니 자연히 그에 따른 야식이나 간식도 없어졌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수면 시간이 당겨졌기 때문일 뿐만이 아니고 같이 뭔가를 먹어주는 사람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있을 때 우리는 빵값으로만 일주일에 5만 원 이상을 지출하는 빵순이 빵돌이 커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게 다 아주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어디의 무슨 빵을 사다 놓아도 그 빵의 맛을 온전히 음미하며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그의 49제에 올리려고 주문한 버터크림빵은 그로부터 한 달 반 정도가 지나도록 다섯 개를 겨우 먹고 아홉 개가 냉동실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나의 의식이고, 그와 함께 30년 가까이를 살면서 먹는 걸로 딱히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는 내 몸은 또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얼마 전부터 저녁 일곱 시 반에서 여덟 시 정도 사이에 배고프다는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이 안 들 정도의 공복감이 밀려들어 당황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요즘 나는 12시쯤에 점심 한 끼를 먹는 것이 공식적인 식사의 전부다. 그 후로는 커피나 차를 마시고 요거트 한 두 개를 사이사이 먹는 것 말고는 딱히 뭔가를 먹지 않는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쉴 새 없이 뭔가를 먹던 패턴이 갑자기 이렇게 바뀌었으니 몸이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것치고는 이 반강제적 간헐적 단식은 의외로 견딜만했다. 그러던 중에 저녁 무렵 닥쳐오는 이 갑작스러운 공복감은 내게는 퍽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남들도 다 이런 건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은 자주 겪는 일이고, 그 순간을 넘기는 소위 꿀팁들도 꽤 여러 가지가 공유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글들을 뒤지다가 뜻밖의 글 하나를 발견했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그래서 대개 뭔가를 먹는다는 행위를 사회적인 유대감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그래서 배가 고프다는 감각은 실제의 공복감일 수도 있지만 정서적인 만족감이 채워지지 않을 때 나타나기도 한다고. 그러니까 친구나 지인에게 연락을 해 가벼운 수다를 떠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이거였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의 흘러간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그 화면을 마주하고 앉아 식탁도 아닌 책상에서 대충 한 끼를 때우고, 이 집 빵은 어떤 점이 맛있고 어떤 점은 아쉽다는 말들을 늘어놓으며 먹던 빵들도 이제는 전혀 먹지 않고 있고, 새벽이면 밀린 드라마며 개봉을 놓친 영화를 보면서 집어먹던 과자 같은 것도 이제는 없으니까. 공급되던 열량이 줄어든 것만큼이나 내게는 그와 함께 나누던 시간들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외롭다 혹은 쓸쓸하다는 감각이 그 저녁 무렵의 헛헛함으로 발현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거라면 그냥 적응해야 한다. 다른 방법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으므로. 내가 해야 하는 홀로서기에는 이런 것까지가 모두 포함되어 있으므로. 그가 없이도 예전처럼 뭔가를 잘 먹을 수 있게 되던가, 그가 없는 외로움과 배고픔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해지던가. 둘 중 어느 쪽으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