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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두서없는 성격이라 음력으로 날짜 세는 걸 잘 못하는 편이라는 글을 이미 몇 번이나 쓴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1년에 겨우 한 번 있는 그의 이번 제사 날짜를 헷갈려서 다음 주 화요일로 알고 있다가 오늘 오후에 이것저것 밀린 일정 정리를 하면서 4월 5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래놓고 브런치를 뒤져 보니 올해 그의 제사는 그의 양력 생일과 같은 날이다 운운하는 글까지 써놓은 걸 확인해 보고 새삼스레 내 정신머리 없음에 한숨을 한 번 내 쉬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양력 생일과 겹치는 바람에 헷갈린 거라고 변명하기에는 겨우 보낸 지 3년 만에 벌써 제사 날짜를 헷갈리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좀 어이가 없었다.
괜히 제 발이 저려서, 그냥 말 난 김에 2030년까지 그의 제사 날짜를 캘린더에 전부 체크했다. 어떤 해는 4월 2일이었고 어떤 해는 4월 24일이고 뭐 그랬다. 마지막 2030년의 제사 날짜를 체크할 때쯤엔 이때쯤엔 나도 쉰을 훌쩍 넘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 올해 10월이 지나면 나는 만 나이로 따져도 언제나 그 자리에 멈춰 있는 그보다 '연상'이 된다. 물론 2030년이 되어봤자 내가 그 없이 보낸 시간은 고작 8년에 지나지 않을 테고 그와 함께 보낸 시간의 절반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나날을 혼자 살아간 이후일뿐일 것이다. 새삼 그와 내가 참 어린 나이에 만나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내가 참 빨리 혼자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요즘 사람들'은 좋은 집도 좋은 차에도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몇 년 후에 무슨 영화가 개봉한다는데,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언제 컴백한다는데 그때까진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뭐 그런 심리일까. 그게 어떤 건지 좀 알 것 같기도 하다. 요즘 내 삶을 붙잡는 것들도 한 발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저까짓 게 다 뭐라고, 싶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 뿐이니까.
그렇게, 무엇 무엇할 때까진 살아야지 하고 저만치 이정표로 새워놓을 만한 항목 중의 하나로 '핼리혜성의 재방문'(자그마치 2061년으로 예정되어 있다는 모양이다)이라고 한다. 가만있자, 그때가 되면 내가 몇 살이야 하고 헤아려 보니 80이 한잠 지난 나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내가 과연 그때까지 살아서 핼리혜성을 볼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아주 어릴 때 핼리혜성에 관현 텔레비전 뉴스에서 이 혜성의 재방문 주기가 76년이라는 말을 듣고 그럼 나는 80이 넘어서야 이 혜성을 다시 보는 거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어슴푸레하게 났다. 그때쯤 되면 최소한 그와 함께 한 시간보다 그 없이 지낸 시간이 훨씬 더 길어져 있긴 하겠다. 그때까지도 살아있을 수 있다면 난 어떤 할머니가 되어 있을까. 아마 그때도 난 내 집의 벽에 언젠가 그린 그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그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