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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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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이번에 경상도 쪽에 불 크게 난 것 때문인지 몰라도 올해 식목일은 임시공휴일이래요, 라는 말을 한 것은 거래처 담당자분이었다. 진짜냐고 묻는 나에게 담당자님은 근데 하필 올해 식목일이 토요일이라 4월 7일이 대체휴일로 쉰다네요 하는 말까지 덧붙였다. 달력을 한 번 슥 쳐다보고는 나도 모르게 납득해버리고 말았다. 워낙 그럴듯했으니까.


이번 주와 다음 주는 거짓말 좀 보내서 하루 걸러 하루 꼴로 봉안당에 가게 된다. 월요일 미팅을 마친 후에 늘 하듯 봉안당에 다녀왔고 이번 주 토요일에는 그의 양력 생일 겸 3주기 제사가 있고, 다음 주는 또 월요일 미팅 이후 봉안당에 가고 그다음 날인 8일은 그가 양력으로 떠난 날이고 금요일인 11일은 그의 음력생일이고 뭐 이런 식이라 그야말로 거를 타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월요일이 대체휴일이 되어서 쉬는 날로 바뀌었다고 하니 뭐 먹고살 일이라도 난 것도 아닌데 길에 꿀이라도 발라놓은 듯이 차비 써가며 오가지 말라고 이 사람이 하루 쉬게 해 준 건가. 뭐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사건의 전말은 어제 오후쯤 밝혀졌다. 4월 4일은 그냥 임시공휴일을 하든지 했으면 좋겠다고, 그날 회사에 잡아둬 봤자 아무도 일 같은 거 안 할 텐데 하고 푸념하는 담당자님에게 아무리 그래도 토일월 3일이나 쉬는데 금요일까지 쉬게 해 달라는 건 좀 선 넘었죠 하고 웃었다. 담당자님은 그 말에 매우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시더니 그거 만우절 장난이었는데요 하고 매우 머쓱하게 대답하셨다. 그러고 보니 저 대체휴일 이야기가 나온 게 4월 1일이었다. 하도 만우절 같지 않은 만우절이라 그게 농담일 수도 있다는 생각 같은 건 전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순간 여러 가지 복합적인 기분이 치솟아 무슨 그런 걸로 농담을 하고 그러냐고 나잇값도 못하고 정색하고 화를 낼 뻔했다. 이럴 땐 얼굴 안 보이는 메신저 대화가 내 적나라한 민낯을 숨기기는 참 편해서 좋긴 하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제사 날짜를 헷갈린 것부터 시작해서, 1년에 몇 번 있지도 않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봉안당에 찾아가는 이벤트 한 번 걸린 걸로 너무 생색을 내고 있었나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좀 면구스러워졌다. 내일쯤엔 제사상에 올릴 소금빵이라도 사러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베이커리에라도 좀 가봐야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휴일 가지고 농담하시면 어떡해요 이번 주 미팅 자료는 조금 늦게 만들어도 되는 줄 알고 좋아했잖아요 진짜 선 넘으시네 하고, 혹시나 조금 전에 내가 정색하고 화가 났었다는 사실을 상대가 깨달을까 봐 ㅠㅠ하는 표시까지 잔뜩 붙여서 메시지를 보냈다. 내 신상에 이런 복잡한 일이 있는 줄 모르는 담당자분으로서야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하셨겠지만.


image_readtop_2021_853561_16306545544772960.jpg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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