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올해는 고로케

-493

by 문득

제사라는 건 원래 집에서 지내는 게 맞다. 없는 솜씨나마 어떻게든 내 손으로 이것저것 해서, 그도 그 핑계를 대고 한 번씩이라도 왔다 가도록 집에서 지내는 것이 맞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딱히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지도 않는 주제에 뭐가 늘 그렇게 마땅치 않다. 그래서 올해로 3년째, 나는 봉안당에서 준비해 주시는 제사상과 제례실로 그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올해는 그런 와중에 날짜까지 깜빡 헷갈려 버려서 더 면목이 없긴 하다.


제사상에 고인이 생전 좋아하던 음식을 한두 가지 정도 올리는 것은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하는 예법과 상관없이 괜찮다길래 매년 빵을 한 종류씩 올리고 있다. 원래라면 그날 시켜 먹으려고 했던 우육탕을 포장해 가서 한 그릇 올리고 싶었지만 집에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한 시간 반 이상이 걸리는 길을 가는 동안 그 우육탕이 무사할 리도 별로 없거니와 결정적으로 시간이 지나는 사이에 그 가게가 문을 닫아 버려 그 가게의 우육탕은 이제 영영 먹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자의 반 타의 반 그의 제사상 특별 메뉴는 빵으로 확정나버리고 만 감이 없지 않다.


첫해는 춘천에 있는 한 베이커리에서 주문씩이나 한 버터크림빵을 올렸다. 작년에는 우리 집 근처의 빵집 중에서 그도 나도 가장 좋아했던 빵집 한 군데가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분점을 냈기에 그 가게의 소금빵을 사다 올렸다. 올해는 또 무슨 빵을 한쪽 사다 올려볼까 하고 간만에 베이커리에 갔다. 매장을 두 세 바퀴 돌다가, 한쪽 구석에 진열된 고로케를 보고 발을 멈췄다. 그는 고로케를 좋아했다. 그냥 좋아한다는 말로는 좀 형용이 부족할 정도로 좋아했다. 처음 가보는 빵집의 맛을 평가하는 일종의 바로미터로 나는 슈크림빵을, 그는 고로케를 애용했다. 뭐 그 정도로 그가 좋아하던 빵이었다. 나는 사실 기름에 튀겨서 어딘가 좀 느끼한데다 여차하면 속에 든 소가 뚝뚝 떨어져 흐르는 이 고로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가 하도 좋아해서 옆에서 하나씩 같이 먹다 보니 종내엔 같이 좋아하게 되고 말았다. 물론 그랬으므로, 나는 지난 3년간 고로케라는 것을 사다 먹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고로케를 샀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목살과 파채를 샀다. 가뜩이나 봄이 되고 미세먼지는 술렁술렁 늘어나는 참이니, 맛있게 잘 구워서 파채까지 넣은 비빔면에 곁들여서 맛있게 먹고 지나간 4개월 간의 마음고생을 스스로 좀 다독여줄 생각이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훌쩍 떠나버리고 난 지 3년도 안 되어 이 나라에 또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짐작이나 했을까. 어쩌면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꼴 저 꼴 보기 싫어서 그렇게 먼저 내뺀 것일지도.


나는 그래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그 사람이 떠나버린 이 세상 위에서.


gv00000300810_1.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선 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