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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 잡히는 미팅이 있는 월요일이나 가끔 생기는 외출할 일이 있는 날이 아닌 이상 나의 하루는 대개가 대동소이하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아침 정리를 하고, 오전 업무를 보다가 하루에 한 끼 먹는 밥을 먹고, 또 남은 일을 하다가 해가 저물면 대충 하루가 끝나는 식이다. 계엄 사태 이후 한동안은 뉴스를 꽤 열심히 봤었지만 중간중간 몇 번 '속에 천불이 나는' 일을 겪고부터는 스스로의 심기 경호(나조차 내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그래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차원에서 그나마도 보지 않게 되어서, 요즘 나의 하루는 퍽 단조롭다. 그리고 일 때문에라도 누군가와 메신저로 대화를 하거나 전화를 할 일조차 없는 주말은 조금 더 그런 감이 없지 않다.
그냥저냥 매우 평범한 일요일이라고 생각했다. 비가 내려 날이 쌀쌀하던 토요일과는 다르게 어제는 날도 맑았고 기온도 한결 따뜻해졌다. 넉 달을 끌어오던 탄핵도 마무리됐고, 그 후폭풍 비슷하게 자잘한 잡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큰 고비를 하나 넘어갔다 생각해서인지 한참 일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있던 그때만큼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 기분이었다. 늘 일어나던 시간쯤에 일어나서 정리를 하고, 홈트를 하고 이것저것 넣고 싶은 것들을 넣고 싶은 만큼 넣어서 만든 리조또를 먹고 미리 만들어 둔 미팅 자료나 한 번 챙겨보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은 없는 지극히 평온한 하루였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가 어딘가 붕 떠 있어서, 나는 지금의 상태가 평온이 아닌 공허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3년쯤 지나면 좀 괜찮아지겠지 하고. 왜 하필 3년인지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정말로 탈상한다는 생각에서였는지, 아니면 어릴 적 무수히 읽은 전래동화에서부터 머릿속에 박힌 '3년'이라는 기간이 제법 적당하게 느껴져서였는지. 45.195km를 달리는 마라톤의 결승점처럼 그간 아주 막연하게 '3년'이라는 한 지점을 정해놓고 거기까지만 가면 뭔가가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 가며 살아오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극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가 떠난 지 3년이 되었다고 해서 그 지점에 뭔가가 있진 않다. 그건 애초에 그럴 수가 없다. 떠나간 사람을 기다리는 기약이라면 또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경우엔 이미 사람 하나를 잃어버린 후다. 3년이 아니라 30년을 기다린다고 거기에 뭔가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3주기를 지내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매우 막연하게 3년 정도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나의 많은 부분을 유예해 오고 있었다는 것과 지극히 당연하게도 3년이 지나 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 하나뿐이었다.
감히 그가 떠나간 직후의 허탈함에 비길 수는 물론 없다. 그가 떠나간 이후의 내 삶은 그저 내내 쭉 같을 뿐이다. 3년이 지났다고 해서 뭔가가 달라질 리도 없고 애초에 그럴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열 밤만, 백 밤만 자면 엄마가 돌아오실 거라는 부질없는 약속을 하는 것처럼 나는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그렇게 달래오고 있었던가보다 하는 생각을 한다.
홀가분해질 거라는 기대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그럴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그런 것 치고도, 뭔가를 잃어버려 놓고 뭘 잃어버린 건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듯한 먹먹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서 어제 하루는 내내 우울했다. 단박 나아질 것 같진 않고, 너무 오래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의 봉안당으로 가는 길에 슬슬 봄꽃이 피기 시작한 것을 봤다. 여기저기 꽃이라도 피면 좀 나을까. 한동안 내게 봄꽃은 그저 순전한 슬픔이었는데 올해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젠 시간도 웬만큼 지났고 그래서 좀 괜찮아진 줄로 생각했더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