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7
생각해 보면 그랬다. 이 계절은 원래부터도 좀 사람을 심란하게 하는 데가 있었던 듯도 싶다. 지난 1, 2년간은 워낙 나 하나 붙들고 있는 것이 힘들어서 모르고 지나갔을 뿐, 막 봄이 시작되려는 이 무렵은 내내 언제나 그랬다. 그 와중에 지난겨울에는 통째로 나라가 망할 뻔한 대형 사고가 터졌고 그게 또 간신히 일단락된 것이 지금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이 시기에 내 인생에는 도저히 메꿀 수 없는 커다란 구멍 하나가 갑작스레 지반이 주저앉은 싱크홀처럼 뚫리고 말았다. 내 봄이 여상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 글이 연재되고 있는 '당신에게'의 시즌 2를 그의 3주기를 전후해서 닫고 잠깐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시즌 1에 들어간 글의 개수가 469편이니 얼추 비슷하게 차기도 했고(아무리 뭣한들 시즌 2를 500, 600을 지나 천까지 넘버링을 붙여가며 쓸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말 그대로 '탈상'하는 무렵을 맞아 조금 재충전도 하고 마음을 좀 추스르기도 했으면 싶어서였다. 그러나 그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날이 언제여야 하는지 그것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의 3주기 제사라면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 내 기준으로 날짜를 세는 양력 기준이라면 오늘이어야 하는데 별로 그럴 엄두도 나지 않는다. 며칠 후면 돌아오는 그의 음력 생일로 해야 하는지, 그게 아니라면 이 브런치를 시작한 지 정확히 3년이 되는 4월 15일이어야 하는지, 혹은 시쳇말로 '아쌀하게' 글 수를 딱 천으로 채우고(이 계산대로라면 4월 21일쯤이 될 것 같다) 쉬어야 하는지, 어느 날이라도 다 괜찮을 듯도 싶고 어느 날이라도 다 그럼직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브런치에 올라와 있는 천 편에 가까운 글을 날을 잡고 정독한다 해도 읽으시는 분들에게 무엇이 남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물론 이 브런치는 기본적으로 누구 보라고 쓰는 글이 아니라 그냥 나 혼자 주절거리기 위해 만든 것이긴 하다. 그러나 사람이란 본래 혼자 쓰고 혼자 읽는 일기장에조차도 남을 의식한 거짓말을 하는 존재이므로 나 역시도 어쩔 수 없이 이 브런치의 존재 이유라든가, 방향이라든가 하는 것을 고민하게 된다. 막연히 정해두었던 3년이라는 시간이 끝나고 스스로 생각해도 의아할 만큼 흔들거리고 있는 것에는 어느샌가 내 일상을 지탱하는 하나의 닻으로 자리 잡은 이 브런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아 조금은 있다.
그래도 뭔가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다. 그에 대한 생각, 혹은 그가 없는 나날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이야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삼, 이 브런치를 만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던 그 무렵을 떠올려본다. 곁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떠나버린 누군가에게 조그만 위로라도 될 수 있는 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겠고 살아남은 하루하루가 죄스럽겠지만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혹은 무정하게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브런치였다는 것을. 그리고 모르긴 해도, 22년 4월의 글들과 요 며칠 새 나의 글을 비교해 보면 약간의 변화가 느껴지긴 해서 일견 다행스럽기도 하다.
산 너머 저쪽에 행복이 있다기에 찾아갔다가 눈물만 흘리며 돌아왔다는 시구가 있다. 그냥, 먼저 그 '산 너머 저쪽'에 와 버린 사람으로서 산 너머에도 인생은 계속되고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는 이래도 저래도 꾸역꾸역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그런 글을 앞으로도 써야 하지 않을까. 3년 전 오늘, 이 사람이 이 풍진 세상에 나만 남겨두고 훌쩍 떠나버린 날 아침에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