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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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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결국 대선 날짜가 6월 3일로 정해진 모양이다. 내 기억에 분명히 대선이라는 건 5년에 한 번씩 연말에, 크리스마스 근처에 하던 투표였다. 그렇게 연말에 선출된 새 대통령은 두 달 정도 인수인계를 받고 새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2월 말쯤에 선서를 하고 취임했다. 아주 오랫동안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에게 처음으로 선거권이 생겼던 15대 대선부터가 아니라 내가 텔레비전을 보고 대통령 선거라는 말을 처음 배운 그 무렵부터도 이미 그랬다.


아주 오랫동안 그랬던 대선의 날짜가 엇나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6년 탄핵 때였다. 내내 겨울에 치러지던 대선은 조금씩 날씨가 후끈해지기 시작하는 봄으로 끌려 나왔고 그래서 '장미 대선'이니 하는 별명이 붙었다. 그때 투표를 하고 오면서 아 그럼 이제부턴 내내 5월에 대선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렇게 한 번 바뀐 대선 날짜가 무슨 천지가 개벽할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계속 가려나 생각했으나 10년도 못 지나서 대선 날짜는 한 번 더 바뀌게 되었다. 참 격동의 세월이라고 할만하다.


3년 전 그 해는 내게는 그가 떠나간 해라고 너무나 머릿속에 강렬하게 박혀 있어서 그 해에 대선이 있었다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좀 더 정확히는 그가 떠난 것과 며칠 전 탄핵당한 그 사람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실이 같은 해의 타임라인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른 매치되지 않는 것에 가깝다고나 봐야 할까. 이 글만 해도 그렇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나는 막연하게 그가 떠난 지 한 달 후에 대선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고 윗 문단에도 그렇게 생각했노라고 썼다. 그러나 그게 그럴 수가 없다. 2017년의 대선도 올해 6월에 치를 대선도 일종의 '비상상황'에서 급하게 치르는 대선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의 대선은 두 달의 인수인계 기간이 필요하기에 취임일로부터 두 달 전에 날짜가 잡히는 것이 맞다. 2022년의 대선은 5월이 아닌 3월에, 즉 그가 떠나기 한 달 전에 치러졌다. 내가 자꾸만 그가 떠난 지 한 달 후에 대선을 했다고 기억하고 있는 것은 선거가 아닌 취임이 5월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아마 이번 대선 말고 다음 대선은 4월에 치러지게 되겠지.


그래서 당연한 말이지만 지난 대통령 취임식은 그런 게 있긴 했던가 싶을 만큼 내 기억 속에는 숫제 털끝만큼도 남아있지 않다. 당시에 나는 반쯤 나가 있던 넋이 간헐적으로 제 자리로 돌아오려다가 갑작스레 그가 떠나버린 현실을 깨닫고 무슨 핑계로든 발작적으로 울음을 터트리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당시에 나는 깍지 밖으로 고개만 내밀어도 죽는 줄 아는 달팽이처럼 집 속에 틀어박혀 있는 힘껏 웅크리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 대선과 그 결과로 일어난 많은 일들은 내 기억 속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어느새 3년이나 흘렀고, 이제 청승 그만 떨고 적당히 '덮어쓰기'를 하라는 듯 올해 다시 대선이 열린다. 요즘 자꾸만 마음이 뒤숭숭한 것에는 자꾸만 3년 전의 그 시간과 비슷한 타임라인을 밟아가는 많은 것들도 한몫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뭐, 핑계일 뿐인지도 모른다.


4421021_sJX.jpg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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