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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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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그가 떠나가고 난 후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프리지아를 사다 꽂아놓는 버릇이 생겼지만 정작 그 프리자아에 노란색 말고 다른 색깔도 있다는 걸 안지는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집 근처 마트의 화훼 코너에 어디서 많이 본 빨간색(이라기보다는 다홍색이라고 해야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꽃이 있는 걸 보고 저건 무슨 꽃인가 하고 들여다보다가 색깔만 다른 프리지아인 걸 알고 적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마 노란 프리지아가 워낙 유명한 데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어서 그럴 것이다.


3년 간 꽃을 사다 나른 횟수만도 얼추 120번 정도가 되어 가지만 다른 색깔의 프리지아를 사 본 적은 그간 한 번도 없었다. 다른 색깔을 한 번쯤 사보려고 하다가도 막상 마음의 결정을 내릴 순간이 오면 그래도 역시 프리지아는 샛노란 색이 제맛이지 하는 생각에 결국 노란 프리지아를 사게 된다. 아마 올해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타이밍 좋게 풀린 두 번의 유찰꽃 상품에 모두 프리지아가 거의 한 단 가까이 들어 있어서, 이미 한 달 정도 노란 프리지아를 계속 보지 않았더라면. 심지어 다른 꽃들은 조금 구색이 바뀌는 것 같은데도 프리지아만은 두 번 연속으로 똑같이 들어있기도 했다. 그러지만 않았더라도 올해도 다른 색 프리지아를 사볼까 하고 생각만 하다가 결국은 또 노란 프리지아를 샀을지도 모른다.


처음 집으로 택배가 왔을 때만 해도 피지 않은 봉오리들만 시퍼렇게 달려 있어서 영 털갈이하는 병아리모양 모양이 안 나던 프리지아는 한 며칠 사이 제법 봉긋하게 피어올라서 보기에 예쁘다. 얼마 전 얻은 깨달음(?) 대로 줄기를 사선으로 자르지 않고 일자로 자르는 것이 프리지아에게도 잘 맞는 모양인지 확연히 앞전에 사다 놓은 프리지아들보다 올해의 프리자아들이 더 오래, 더 생생하게 마지막까지 꽃을 잘 피우고 가는 것 같다. 분명히 같은 모양의 꽃인데도 그 색깔이 노란색에서 보라색으로 달라진 것만으로 한결 어른스럽고 애틋한 느낌인 것은 좀 신기하긴 하다.


프리지아는 딱 이맘때가 제철이다. 제철이 지나가기 전에 흰색이든 빨간색이든 분홍색이든, 눈에 띄는 다른 색깔의 프리지아가 있다면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한 단만 더 사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은 그의 음력 생일이다. 봉안당에 파는 꽃에도 보라색 프리지아가 있다면 좀 보여주고 싶은데 그것까지는 좀 무리가 아닐까. 뭐 그렇게까지 안 해도 알아서 잘 챙겨보고 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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