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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그의 3주기 때는 비가 왔고, 그래서 아우터까지 껴입고 나가고도 별로 후덥지근한 줄 몰랐다. 오히려 조금 쌀쌀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으니까. 그러고 나서 날씨가 '정상'으로 돌아온 이번 주 월요일 미팅과 화요일까지는 밖에 나갈 때 그냥 약간 도톰한 스웨터나 하나 달랑 입고 휘적휘적 나갔다 왔다. 그래도 별로 추운 줄을 모르겠어서 날씨가 풀리긴 많이 풀렸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집을 나서면서 뭘 입어야 되나 잠깐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미련스레 지금 아니면 못 입는 봄가을용 아우터를 우정 꺼내 입었다. 이미 이번 주에만도 두 번 스웨터 하나만 입고 나가도 밤늦게까지 싸돌아다닐 게 아니라면 이 정도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몸소 확인한 차에 다분히 미련한 짓이긴 했다. 솔직히 아마도 오늘이 당분간 이거 입는 마지막 날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강렬하게 들었기 때문이며, 타이밍 잘못 맞추면 한번 꺼내보지도 못하는 봄가을 옷이니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입고 집어넣어야 한다는 '본전 생각'이 났던 것이다.
아침에 집에서 나설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문제는 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였다. 봉안당으로 향하는 길을 올라가는 내내 콧잔등으로 삐질삐질 땀이 맺혔다. 비탈을 다 올라갈 무렵에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져서 소매를 팔꿈치 조금 아래까지 걷었다. 빨아서 넣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입겠다고 꾸역꾸역 아우터를 껴입고 나온 나의 미련스러움이 조금 미워지기 시작할 무렵 오르막길을 다 올라와 조금은 땀이 식었다. 그의 제실 앞에 꽃을 갖다 놓고, 지난주 당신 제사 때까지만 해도 안 그러더니 이젠 날씨가 살짝 덥다는 푸념을 한참이나 늘어놓았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타자마자 창문을 열었다. 그러다가 날이 꽤 후덥지근한데도 아무도 창문을 열지 않은 것이 이상해 손을 뻗어보니 찬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차 안에 에어컨이 켜져 있었던 것이다.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 열었던 창문을 다시 닫았다. 그러니까 나는 올해 4월 중순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에어컨 바람을 쐰 것이다. 우리나라 기상청이 태풍 경로 예측을 크게 잘못한 적이 몇 번 있어서 그 일로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을 뿐 연간 단위의 대략적인 날씨는 꽤 잘 맞추는 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기상청은 이미 겨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올해는 4월부터 11월까지 더울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그러려나 보다. 기상청 '닉값'을 이런 식으로 구경하게 되다니. 올해는 또 얼마나 더워서 잠 못 드는 밤을 지나가야 할까. 벌써부터 그런 걱정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