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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하는 거래처 담당자님이 카톡을 보냈다. 며칠 있으면 복날이라 삼계탕이라도 하나 보내드리려고 하는데 받으실 주소를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아, 벌써 날짜가 그렇게 됐나. 그러고 보니 일부러 찾아보진 않았지만 7월 초중순 무렵이니 슬슬 복날 언저리일 것 같기도 했다.
많은 집들이 그렇겠지만 우리 집에서도 복날은 암암리에 '닭 먹는 날'이 되어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그는 닭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은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는 식재료에서 나는 각종 잡내에 유독 예민했고 그래서인지 닭고기에서 나는 특유의 닭 비린내를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삼계탕이나 백숙 등,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는 닭고기 요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복날을 맞아 삼계탕이라도 사 먹을라치면 그는 닭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지도 않은 반계탕 정도를 시켜서 소금과 파를 잔뜩 넣고 밥을 말아먹는 것으로 복달임을 대신하곤 했다.
그렇게 본인은 닭고기를 싫어하면서도 그는 어떻게든 나에게 닭을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복날마다 이런저런 닭 요리를 하곤 했다. 칼칼하게 끓인 닭볶음탕 같은 것이 무난했지만(그 또한 상대적으로 닭 비린내가 덜 나는 닭볶음탕은 닭으로 만든 음식 중에 비교적 잘 먹는 편이었다) 이 더운 여름에 뜨거운 닭볶음탕을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세 번 먹는 것도 무리가 있었고, 그래서 복날 세 번 중에 한 번은 삼계탕, 한 번은 닭볶음탕을 한다 치더라도 한 번 정도는 메뉴가 애매했다. 그는 도대체 이날 닭으로 뭘 해 먹어야 둘 다 맛있게 먹을 것인가를 꽤나 오래 고민하다가 몇 년 전에 답을 찾았다. 초계국수가 그 답이었다. 그가 해주는 초계국수는 맛있었다. 다만 그 조리하는 과정이 옆에서 보는 사람이 같이 힘들 만큼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초계국수를 해 먹는 날은 대개 초복이었다. 초복날 아침이 되면 그는 아침일찍부터 육수를 만들어 냉동실에 넣어놓고 준비해놓은 닭고기를 토막 쳐서 껍데기를 일일이 벗긴 후에 미리 삶아 식힌 후에 뼈를 발라내고 일일이 손으로 잘게 찢었다. 찢은 닭고기 살에 양념을 하고, 양파에 오이에 당근에 파프리카에, 여하튼 고명으로 들어갈만한 채소는 몽땅 꺼내 고명을 썰었다. 그러는 사이사이 냉동실에 넣어둔 육수가 꽁꽁 얼어 덩어리가 지지 않도록 수시로 꺼내 저어줘야 했다. 거기까지를 다 하고 나면 소면을 삶아 찬물에 헹구고, 무쳐 놓은 닭고기에 태산 같은 고명을 얹고 사각사각하게 살얼음이 낀 육수를 부어내는 것까지 다 해야 완성이었다. 그 번거롭고 손 많이 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난 뭘 저렇게까지 하나 그냥 몇몇 과정은 좀 생략하면 안 되나-이를테면 닭을 장만할 때 껍데기를 일일이 벗기지 않는다든가, 고명을 몇 종류 줄인다든가 하는 식으로-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런 번거로운 과정을 다 거치고 만든 그의 초계국수는 과연 그만큼 담백했고, 시원했고, 맛있었다.
올해 초복은 이번 주 토요일인 모양이다. 그날이 초복인 줄을 미처 모르고 잡아놓은 나의 일정표에 따르면 그날 나는 라면이나 하나 대충 끓여먹고 때울 예정이었다. 외주 작업자까지 챙겨주시는 고마운 거래처 덕분에 그날은 삼계탕으로 복달임을 때우게 되겠지. 그러나 그가 아침 일찍부터 동동거리며 만들어주던 그 초계국수는 이제 다시는 먹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좀 슬퍼진다. 요즘은 시판용으로 나오는 초계국수도 있겠고 언젠가 내가 좀 마음이 안정되면 어깨너머로 보던 것을 기억해내 가며 흉내 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가 해주던 그 맛은 나지 않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작년에, 재작년에 미리 많이 먹어놓을 걸 그랬다. 이렇게 빨리 그리워질 줄 알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