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이렇게 잘생기지 않았어요

-60

by 문득

그림을 좀 잘 그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어차피 사진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그와의 모든 일들은 이젠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이 때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슬프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여물을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그냥 혼자서 그와의 추억들을 끄집어내 혼자 웅얼웅얼 되씹는 것뿐이다.


나는 지난달쯤 그의 차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증명사진을 가지고 초상화 한 점을 의뢰했다. 비슷한 작업을 해 주시는 분들은 많았지만 어떤 분은 데포르메가 너무 심했고 어떤 분은 화풍이 너무 올드했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나는 작업자 한 분에게 연락을 취해 사진을 보여드리고 작업을 의뢰할 수 있겠는지를 물었다. 그분은 이 정도면 충분히 작업할 수 있고, 대신 앞에 선주문된 작업이 많아 6월 초 정도에나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괜찮으니 작업을 부탁드린다고 대답했다. 어차피 내겐 이제 남는 게 시간이니까.


위태한 일상을 붙잡고 더는 무너지지 않으려고 갖은 발버둥을 치는 사이 한 달의 시간이 지나갔다. 6월 초쯤 작업한다고 했으니까, 이제 조만간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작업자님에게서 메시지가 왔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그 그림은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림 속의 그는, 너무 젊고 잘생기고 날씬했다. 그는 젊지도 않았고 날씬하지도 않았다. 눈이 크고 콧대가 오뚝해 이목구비는 꽤 뚜렷한 편이었지만 그걸 소위 잘생겼다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림 속의 남자는 그의 그런 부분들이 싸그리 필터링돼 미화된, 마치 어느 아이돌 그룹 멤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한참을 더듬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잘 그려주시긴 했는데 너무 안 닮았어요. 이 사람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저의 남편이고, 저는 이 사람의 하나뿐인 유족이에요. 팬 아트 같은 것을 주문드렸으면 이대로 감사히 받았겠지만 이 사람은 제가 그려달라고 부탁드린 그 사람이 아니에요. 작업자분은 죄송하다고 사과하셨다. 실제 이상으로 예쁘고 잘생기게 그리는 것을 원하는 것이 보통이며 그래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작업했던 것 같다고, 이 그림이 어떤 의미인지를 좀 더 자세하게 확인하고 작업을 시작했어야 했다고. 그리고 다음날 나는 수정된 그림의 사진을 받았다. 여전히 실제의 그에 비해 하관이 좀 갸름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의 얼굴이었다. 뺨에 드문드문 나 있던 잡티가 사라지고 머리를 정갈하게 다듬은 그는 마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던 지식인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차이라고 하면 될까. 사진이 남의 눈에 보이는 그의 얼굴이라면 이 초상화는 내 눈에 비친 그의 얼굴이라고.


어제 나는 작업자님이 제작해 보내주신 액자를 받았다. 나는 그 액자를 내 책상에서 고개만 들면 보이는 벽에 걸어놓았다. 액자를 걸어놓고 나서야 지금의 내 꼴이 마루 위 제일 잘 보이는 곳에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걸어놓는 할머니들과 똑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웃었다. 그러니까, 그분들도 떠난 사람이 보고 싶어서 그러셨던 거구나. 그런 뒤늦은 깨달음과 함께.


왜, 이왕 그려줄 거 좀 젊고 잘생기게, 멋있게 그리면 안 됐던 거냐고 그는 물을지도 모른다. 근데 어쩔 수 없었어. 그건 내가 기억하는 오빠가 아닌걸. 기억과 추억은 다르다고 하잖아. 그리고 지금 이 정도도 많이 미화해서 그린 거라고. 솔직히 이렇게 얼굴 안 갸름하잖아. 솔직히 피부 이렇게 안 좋잖아. 그냥 이 정도로 만족해.


이렇게라도 다시 봐서,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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