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그래서, 언제 괜찮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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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매주 월요일에 나는 상담을 받으러 간다. 그가 급작스레 떠나던 날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번도 빼먹지 않고 갔으니 얼추 열서너 번 정도는 간 것 같다.


좀 멀리 잡으면 5월 말 49제를 지낸 이후로, 좀 가깝게 잡으면 7월에 접어들면서부터 나는 아침에 나가면서 오늘쯤에는 상담을 하면서 좀 안 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어림없는 얘기다. 나는 요즘도 상담을 하면서 한 시간 내내 운다. 차이가 있다면 4월쯤에는 말을 잇기 힘들 정도로 많이 울었고 요즘은 말하는 중간중간 운다는 차이가 있는 정도랄까. 아무튼 요즘도 나는 월요일마다 상담을 받으러 가서 울고, 그 여파로 하루 종일 눈앞이 따끔거려 잠자리에 들 때까지 고생을 한다.


요즘 들어 나를 괴롭히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나는 과연 괜찮아질 수 있을까. 괜찮아질 수 있는 거라면, 어디까지 되면 그게 괜찮아진 걸까.


처음엔 다른 누군가에게 그의 이야기를 하면서 담담하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을 정도가 되면 그게 괜찮아지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20년, 30년이 지나도 내게 그의 존재가 범상해질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내 인생의 아주 큰 부분을 공유했던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한마디 말도 없이 내게서 떠나가 버린 기억은 극적이다시피 한 충격이었고, 그래서 앞으로 몇 년의 시간이 흐를지라도 내게 이 일이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그런 일도 있었지 하는 식의 평범한 일로 격하될 날이 올 거라고는 아무래도 생각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바랄 수 있는 거라고는 울지 않고 이 일을 반추할 수 있을 정도가 되는 것, 그 정도가 고작이 아닐까.


그러나 내 마음에 그 정도의 굳은살이 앉는다고 해서 그게 내가 정말로 괜찮아졌다는 뜻이 되는 것일까.


그와 나는 더운 여름날 부주의하게 주머니 속에 같이 넣어둔 두 개의 초콜릿과 같았다. 우리는 뭔가를 공유하는 사이라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엉겨 붙어 있는 존재에 가까웠다. 내 인생에는 그가 엉겨 붙어 있었고 반대로 그의 인생에도 내가 엉겨 붙어 있었다. 우리는 좋은 뜻으로든 나쁜 뜻으로든 서로의 인생을 많이 바꿔놓았고 엉클어 놓았다. 그런 사람이 사라지면서, 나는 그에게 엉켜 있던 나의 일부분을 같이 잃어버린 셈이다. 물론 그 반면에 내게는 그가 남겨놓은 그의 일부분이 남아있기도 하겠지만. 이런 내가 과연 어디까지 괜찮아질 수 있을 것인가. 더 곤란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점이다. 나도, 상담사 선생님도, 떠난 그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에 대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둘 줄어간다. 내게는 아직도 가슴을 저미는 슬픔이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쟤는 도대체 언제까지 입만 열면 저 얘기냐 싶을 지긋지긋한 얘기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 결국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 혼자서, 내 남은 인생 거의 전부를 바쳐가며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나이 마흔도 넘어서 때아닌 철학을 하게 생겼다. 그런 생각을 한다.


Broken-heart-syndrome-during-COVID-19-pandemic_-scale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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