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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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그와 나는 지금 사는 집에 2012년도에 이사 왔다. 꼬박 10년 정도를 산 셈이다.


2017년도 겨울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때아닌 셀프 인테리어에 꽂혀서, 우리는 집안의 세간을 전부 밖으로 들어내고 집안의 모든 벽과 문에 새로 페인트를 칠하는 대공사를 했다. 얕잡아보고 시작한 그 일은 생각보다 매우 힘들었고 그 과정에서 그와 나는 꽤 심하게 다퉜었다. 그러나 그렇게 한 번 고생해서 집 분위기를 싹 바꾸고 나니 볼 때마다 그땐 좀 고생했지만 하길 잘했다고 두고두고 생각했다.


그가 갑작스레 떠나고 난 후 주변의 모든 사람이 당장은 힘들겠지만 이사를 가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조언했다. 어디를 봐도 떠난 사람이 생각날 텐데 거기서 어떻게 계속 살겠냐는 거였다. 집안뿐만이 아니었다. 동네의 모든 가게와 식당 사람들이 그와 나를 알았다. 개중에는 가끔 남편은 요새 바쁜지 통 안 보인다며 안부인사를 건네 오는 부지런한 분들도 있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냐는 말이었다. 그 말이 틀린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집에서의 시간이 10년이었지만 그 훨씬 이전부터 그와 나는 같이 살았다. 그 시간은 20년을 훌쩍 넘는다. 당연히 우리 집엔 모든 것이 두 개씩 있다. 그릇도, 커피잔도, 숟가락도, 젓가락도. 심지어 집에서 입는 티셔츠도 같은 디자인에 사이즈만 다른 것으로 두 벌씩 있다. 아무리 예쁘고 탐이 나는 물건도 짝이 맞지 않으면 사지 않았다.


그랬던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눈에 밟혔다. 나는 내가 그렇게까지 기억력이 좋은 인간인 줄 몰랐다. 집안의 모든 것들에, 이것은 어디서 샀고 살 때 무슨 말을 하면서 샀고 이 것을 쓰는 중에 어떤 일이 있었더라 하는 것이 세세하게 기억났다. 물건들 뿐만이 아니었다. 한 치 앞도 몰랐던 나는 그가 떠나가기 전날 그와 함께 마시려고 청귤차 한 세트를 주문했다. 그 청귤차는 그가 떠나간 다음날 집으로 배송돼 왔고 나는 택배 박스나 간신히 뜯은 그 차를 식탁 위에 아무렇게나 팽개쳐 놓았다. 지금도 냉장고에는 그와 함께 간식 겸 반찬으로 먹으려고 사 둔 냉동만두가 여섯 팩이나 들어 있다. 간식으로 먹으려고 사 둔 미니 피자도 두 개 들어 있다. 나 혼자였다면 절대로 사지 않았을 물건들이었다. 오로지 그와 함께 먹고 쓰려고 사 둔 모든 것들이 이 집에 얼마 전까지 나와 함께 살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가 있을 땐 하루에 한 번 끓이던 보리차를 그가 떠난 후로 일주일에 한 번이나 겨우 끓이게 되었다. 그가 있을 땐 이틀에 한 번 꼴로 비우던 쓰레기통도 이젠 일주일이나 되어야 겨우 버릴 만큼 차게 되었다. 얼음을 얼리고 차를 타 마시느라 하루에 한 병 정도는 쓰던 2리터들이 생수도 이젠 사나흘에 한 병도 채 못 쓰게 되었다. 내 삶은 느려졌고, 헐거워졌고, 느슨해졌다. 그가 떠난 후의 내 삶은 1/2조차도 아니었다. 1/3, 아니면 1/4, 어쩌면 그보다 더 적은 조각으로 쪼개져 부스러져 버렸다. 그럴수록 나는 내가 내 인생의 너무 큰 부분을 그와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이 먹먹해 온다.


그러나 나는 아마도 이 집을 떠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와 함께 고른 페인트를 어설픈 솜씨로 칠한 후 하나하나 세간을 들여놓고 이만하면 북유럽풍이라며 웃던 그 순간을, 어떻게 내가 내 손으로 버릴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잘 구분하지 못하겠다. 잊어야 할 순간들과 남겨야 할 추억들을. 어디부터를 잊어야 하고 어디까지를 간직하고 살아야 하는 건지를. 그래서 그냥 아무것도 버리지 않기로 한다. 급작스러운 그의 부재에 눈물이 터지고 가슴이 메어올지라도.


한때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기억은 이젠 온전히 나 혼자만의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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