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아침에 일어나 방청소를 하던 중에 뭔가 방 안이 어두침침하다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형광등이 하나 나가 있었다. 아 큰일 났다. 그런 생각이 들어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기분이었다.
우리 집은 다소 연식이 오래돼 층고가 높은 편이다. 그런 데다가 전등갓 커버가 두껍고 무거운 네모난 유리판이고 네 모서리에 나사를 돌려 고정시키는 구조로 되어 있다. 나보다 키가 큰 그조차도 형광등을 갈기 위해서는 의자에 올라서서 까치발을 들어야 했고 나는 그 아래 지켜 섰다가 그가 건네주는 유리로 된 커버를 얼른 받아내야 했다. 오랜만에 들어내는 커버 안에는 대개 죽은 날벌레들이 잔뜩 들어있기 마련이었고, 형광등을 간 후 그것들을 털어내고 닦아서 다시 나사 구멍에 맞춰 네 모서리에 나사를 돌려 고정해야 이 번잡한 프로젝트는 끝나는 셈이었다. 이 과정은 대단히 번잡하고 귀찮았으며 가끔은 좀 위험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층고가 좀 낮던지 전등갓 커버가 유리가 아니었던지 둘 중 하나만 했어도 형광등을 가는 일이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는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건강이 많이 나빠진 얼마 전부터는 형광등 하나를 갈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형광등이 나간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며칠을 그냥 지낸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이제 혼자 남은 내게도 일어난 것이다.
눈에 띄었을 때 갈아버리자. 그렇게 마음먹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때라면야 지금 당장 갈지 않아도 괜찮았다. 잠깐 미루는 것뿐이니까. 그러나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누구도 나를 위해 그 형광등을 갈아주지 않는다. 그런 처지에 나간 형광등을 갈지 않고 놓아두는 것은 그냥 방치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지금, 눈에 띄었을 때 해치워야 했다. 정말로 하기 싫어지기 전에. 그렇게 하루 이틀 미루다 보면 남아있는 형광등도 언젠가 나갈 테니까.
식탁 의자를 가져다 놓고 올라섰다. 그러나 높이가 모자랐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커버를 떼어내고 형광등을 가는 것까지는 어떻게 할 수 있겠지만 이 높이를 가지고 가뜩이나 무거운 커버를 다시 씌우고 나사까지 돌려 고정시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설픈 높이의 받침대를 밟고 휘청거리다가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냥 낙상하는 정도로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 커버는 이미 말했듯 유리이기 때문에 말이다. 사실 나보다 키가 큰 그조차도 의자를 딛고 올라서서 까치발을 들어야 했다. 그러니 내게는 무리였다. 안 되겠다. 결국 그런 결론을 내렸다.
의자를 제자리에 갖다 놓고 도대체 뭘 갖다 괴어야 괜찮을지 한참을 살폈다. 내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물건들 중에 프린터를 놓는 데 쓰는 작은 서랍장이 그나마 괜찮아 보였다. 프린터를 들어내고 서랍장을 끄집어내자 그 아래 엉망진창으로 먼지가 쌓인 바닥이 드러났다. 눈에 안 띄었으면 몰라도 봐버린 이상 치우지 않을 수 없었다.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걸레를 빨아 와 바닥을 닦아내며 나는 남들 다 크는 동안 뭘 한다고 키도 이렇게 안 컸냐며 스스로를 타박했다.
서랍장을 갖다 놓고 올라섰다. 여전히 만족스러운 높이는 아니었지만 식탁 의자보다는 훨씬 나았다. 나사를 풀어내고 커버를 벗겼다. 역시나 그 안에는 죽은 날벌레들이 잔뜩 있었다. 묵직한 유리커버를 들고 조심스레 의자에서 내려왔다, 커버를 욕실로 가져가 씻어내며 나는 뭐 먹고 살 일이 났다고 전등 커버를 이렇게 무거운 걸로 만들어 씌워놨느냐며 누구를 향한 건지도 모를 귀먹은 욕을 한참 했다.
일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형광등을 가는 일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답지 않게 이런 일에만은 '여분'을 준비해 놓는 걸 좋아하는 내 성격 덕분에 집에는 새 형광등이 네 개나 있었다. 나간 형광등은 한 개였지만 나는 일을 벌인 김에 두 개를 다 갈아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짓을 두 번 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형광등이 제대로 잘 갈아졌는지 확인할 겸 불을 켜보는 일조차도 이젠 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내려가 직접 불을 켜야 했다. 불은 멀쩡하게 잘 들어왔다.
이제 커버에 나사만 고정하면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이게 문제였다. 전등갓의 구멍과 커버의 구멍이 정확히 위치가 맞아야 나사를 꽂을 수 있었고, 이 유리 커버는 한 손으로 지탱하기엔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하나는 어떻게 어떻게 꽂았다. 일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대각선 방향에 있는 나사를 꽂으면 된다. 그러면 커버가 일차적으로 고정되고, 굳이 무거운 커버를 붙들고 고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두 번째 나사를 꽂는 것이 문제였다. 구멍의 위치가 잘 맞지 않았다. 구멍의 위치를 맞추려고 오른손을 썼더니 할 줄 아는 거라고는 타자 치는 것밖에 없는 왼손으로는 나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고개를 오래 쳐들고 있어서 그런지 조금 있으니 어질어질해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손의 위치가 어긋나면 한쪽만 고정된 유리커버는 어김없이 아래로 쳐졌다. 내가 딛고 올라서 있는 서랍장은 가정용 프린터 한 대를 올려놓으면 딱 맞는 크기의, 그다지 큰 서랍장도 아니다. 비틀거리다가는 정말로 떨어질지도 몰랐다. 당황스럽고 무섭고 짜증이 나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끙끙거린 끝에 나는 겨우 대각선 방향 나사를 꽂아 커버를 고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세 번째 나사는 수월하게 잘 꽂았지만 네 번째 나사는 저 난리를 치는 과정에서 뭐가 엇나갔는지 스무스하게 잘 돌아가지 않았다. 얼르고 달라서 나사를 꽂던 중, 나는 커버 곳곳에 물이 덜 닦인 얼룩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몰라. 어쩌라고. 차라리 비명을 지르듯 그렇게 말했다. 나더러 이 지랄을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싫어. 안 해. 안 한다고. 그렇게 나사 네 개를 다 꽂았다. 다리가 후들거려 서랍장 아래로 단박에 내려올 수가 없어서 서랍장 위로 쭈그리고 앉아 한 발씩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 몇 분 사이에 땀이 비 오듯이 나서 옷이 흠뻑 젖었다. 아, 한 번 일 벌인 김에 형광등 두 개를 다 갈아버리기를 정말 잘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고작 형광등 하나를 갈면서 이렇게까지 난리라니. 나 앞으로 정말 어떻게 살지. 환하게 불이 들어온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바깥 거실 형광등은 제발 오래가야 할 텐데 하는 걱정도. 오빠. 내가 꼴랑 형광등 하나 갈면서 이렇게 난리를 치면서 산다. 내 책상 위에서 그 난리부르스를 모두 지켜보고 있던 그의 액자를 향해 그렇게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