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체념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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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나는 귀찮은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다. 나라는 인간을 이루고 있는 근간 중에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은 구태여 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치워봤자, 정리해봤자 또 어지럽혀질 거라면 그냥 적당히 모르는 척 살다가 도저히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오면 그때 치우면 되지 않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실은 지금도 이렇게 생각한다.


반면에 그는 워낙에 깔끔하고 꼼꼼한 사람이었다. 그는 날마다 창소를 했고 책상과 침대를 정돈했으며 설거지를 한 후엔 기름이나 양념이 튄 가스레인지를 닦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들였다. 일주일에 한 번은 토퍼부터 이불까지를 싹 들어내 먼지를 털어서 다시 깔았다. 나는 내심 그게 참 불만이었다. 이유는 다른 게 없었고 그가 그런 일들을 하고 있으면 나 또한 옆에서 뭐라도 거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청소 같은 건 일주일에 두어 번 몰아서 하면 될 일이고 어차피 매일 밤 들어가 자고 나면 또 어지럽혀질 침대 정리를 굳이 매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의 건강이 나빠져 눈에 띄게 몸이 무거워지고부터는 저렇게 힘들어하면서까지 굳이 그런 자신의 루틴을 다 지키려고 애를 쓰는 그가 딱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가 사라진 지금, 그가 하던 거의 모든 그 귀찮은 일들은 내가 똑같이 하고 있다.


요즘의 나는 아침에 일어나 매일같이 침대를 정리하고 집안을 청소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토퍼부터 이불까지를 전부 걷어내 털어서 다시 깐다. 매일같이 책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한 후엔 가스레인지를 닦는다. 아무도 그러라고 한 사람이 없는데도. 스스로 생각해도 열심이다 싶을 정도로, 나는 그가 하던 일들을 마치 인수인계라도 받은 듯이, 그렇게 똑같이 따라 하고 있다. 물론 그 밀도나 완성도의 측면으로 보자면 그가 하던 것의 반의 반만큼도 안 되겠지만.


나의 그런 행동들은 그를 흉내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일들을 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의 빈자리를 최대한 느끼지 않기 위해 그를 흉내 내고 있는 중이라고. 그런데 어제 상담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문득 그런 말이 나왔다. 그 사람이랑 저는, 그냥 남자 여자 사이라고 할 수는 없었어요. 그냥 가족이었거든요. 저한테는 남편이었지만, 가끔은 아빠이기도 했고 오빠이기도 했고 그랬어요. 그 사람도 그랬을 거예요. 제가 그냥 같이 사는 여자이기만 했다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어느 정도는, 저를 딸 같이, 여동생 같이 그렇게 생각한 부분이 있었을 거예요.


그 순간 나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내가 몇 살까지, 어떻게 살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한 상실감에 몸부림치게 될 날이 있으리라고는 잘 생각되지 않는다. 자식이 있어서 그 자식을 앞세운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내겐 그럴 자식도 없다. 내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함께해온 사람을 일조일석에 떠나보낸 것 이상의 충격이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런 일을 당한 것 치고, 나는 '험한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이대로 내 삶을 놓아버린다는, 어찌 보면 가장 쉽고 명확한 선택지는 한 번도 내 머릿속에서 활성화된 적이 없다. 나는 늘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슬펐고, 힘들었고, 외로웠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대전제 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망가지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고 지금 내가 그런 길을 선택한다 한들 그런 나를 말릴 사람이 지금 내 곁에는 아무도 없다. 술이나 담배에 손을 대고 탐닉할 수도 있을 것이고 도박 같은 것에 빠질 수도 있었을 것이며 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며 나를 좀먹었을 수도 있다. 꼭 그런 것들이 아니어도, 인생을 놓아버리는 방법은 아주 많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만하면 옆길로 새지 않고 꽤 잘 버티고 있다.


이유는 그것 하나였다. 지금껏 그가 내 곁에서, 나를 돌보기 위해 매일같이 해왔던 그 일들을 내가 옆에서 다 지켜봐 왔다는 것. 그는 그런 식으로 나를 돌보고 살펴 왔다. 그러니 그가 곁에 있든 없든, 내게는 그가 그렇게나 소중히 대했던 나를 망가뜨릴 자격 같은 게 없었다. 그가 떠나갔으니 이제는 내가 그를 대신해 나를 보살펴야 했다. 이대로 손을 놓고 망가지는 건 그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해 그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나는 그가 그렇게나 애쓰며 챙겨 왔던 나를 체념해 버릴 자격이 없었다. 이 사실을 어제 말 끝에 불쑥 깨달았고, 나는 또 티슈가 한 서너 장 젖도록 눈물을 쏟았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인생에 내가 너까지 챙기느라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고, 이만하면 할 만큼 했으니 이제 좀 쉬겠다고. 이 갑작스러운 이별은 어쩌면 그런 의미였을까. 그런 거라면 나는 더 할 말도 없을 것 같다. 그간 그의 곁에서 너무 편하게 살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한마디 말도 없이 도망가 버리는 게 어딨냐는 투정 정도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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