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참을 수 없는 일상의 비루함

-13

by 문득

그와의 이별은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비단 내 마음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매우 실제적인 부분에서도 그러했다. 아마도 그 역시도 본인이 그렇게 급작스럽게 내 곁을 떠나게 될 줄 몰랐을 터였고, 그래서 남겨진 뒷정리는 모두가 나의 몫이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슬픔들이 새록새록 터져 나와, 수 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다가 갑자가 울음이 터져 소리 내어 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가 떠나간 주말 내내 나는 다른 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경철서로, 장례식장으로, 화장 후 유골을 모실 봉안당으로 사방천지를 뛰어다녀야 했기 때문이었다. 핸드폰의 걸음 수를 체크하는 어플 기준 하루에 백 보도 걷지 않는 날도 있었던 나의 생활은 며칠 연속 하루에 10킬로미터 이상을 걸어 다니는 강행군으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하기로 한 일의 일정을 지키지 못했고 그 일로 클라이언트와 언성을 높여 다투었다. 장례는 장례고, 일은 일이지. 그깟 장례 3일이면 전부 치르고 끝나는 것 아니에요? 상대의 이 말에 나는 잠시 이성을 잃었고 받은 작업비 다 돌려드릴 테니 그 일 다른 사람에게 맡기라는, 내 평생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말까지 했다. 그가 떠났는데도 내 삶은 계속됐고 내 삶의 문제들도 잔존했다.


이런 일이 있는 날이면 언제나 나의 힐링은 그의 몫이었다. 나는 어지간해서 내 편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편이 아니었고, 잔뜩 우중충한 얼굴을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자면 저녁쯤엔 항상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오늘은 또 왜 그렇게 화가 났냐고. 그런 거 아니라고 일단 시치미를 떼면 그는 웃으며 너는 잘 모르는 모양이지만 너는 화가 나면 컴퓨터 자판 치는 소리부터가 달라진다고, 오늘은 또 왜 그러느냐고 물어 주었다. 그러면 그제야 나는 입이 댓 발이나 튀어나온 채 오늘 하루 나를 속상하게 한 일들을 그에게 종알종알 일러바쳤다. 작업비 지급 약속은 심심하면 어기면서 작업물 일정만 독촉하는 사람들, 내가 물어볼 일 있어서 카톡하면 절대 안 읽으면서 자기가 할 말 있으면 밤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카톡하는 사람들, 처음 일 시작할 땐 없었던 추가 작업을 슬금슬금 요구하는 사람들 등등.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겪는 진상 갑의 종류는 연차에 비례해서 늘어갔고 그런 일들은 당해도 당해도 내성이 생기지 않았다. 그는 내가 쏟아내는 말들을 하나하나 듣고, 이러저러한 부분은 갑이란 원래 그런 인간들이니 네가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적당히 포기해야 하고 이러저러한 부분은 앞으로 일을 할 때 미리 이런저런 장치를 해 놓으면 좋을 것이며 또 이러저러한 부분은 네가 처신을 잘못한 것도 없지 않아 있다는 식으로, 얽힌 실타래같이 엉킨 내 속을 한 가닥 한 가닥 풀어 잘 정리해 주었다. 그래서 그 와의 대화 끝에는 언제나, 한 덩이로 뭉뚱그려져 눈덩이처럼 커져있던 화가 났던 부분과 인간적으로 서운했던 부분과 일 관련해서 짜증이 났던 부분이 정확하게 구분되어 각각의 마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가 명확해지곤 했었고 역시 나는 나 혼자 뭔가를 껴안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고 오빠한테 털어놔야 풀린다는 내 '간증'으로 끝을 맺곤 했었다.


그가 사라진 후 나의 이런 넋두리를 들어주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나는 결국 그 일을 그만 두지 못했다. 그럼 날짜를 며칠 더 줄 테니 그 안에 일을 끝내 달라는 상대의 요구에 나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상대가 사람의 도리로 해서는 안될 말을 한 것이 맞는지, 그래서 내가 그에게 화가 나고 서운한 것이 맞는지, 혹은 내게 어떤 슬픈 일이 있었든 그건 그 사람 입장에서는 남의 일일 뿐이니 내가 남에게 너무 큰 연민과 공감을 기대했던 게 문제인지, 나는 그 누구에게도 물어보고 공감을 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내 그럴 것이다. 나는 살면서 번번이 맞닥뜨릴 이런 문제들에, 이제는 나 혼자서 답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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