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아내

-14

by 문득

그는 갑갑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건강이 나빠지기 전의 그는 더없이 활달하고 남의 앞에 나서기도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꿈은 요트를 한 대 사서 몇 달간 육지에 돌아오지 않고 바다 위를 항해하는 거였다. 그러던 사람이어서, 나는 아주 먼 훗날 그가 내 곁을 떠나게 된다면 수목장을 해줘야 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아무 데나 뿌려버리는 건 내가 싫었고 어두운 땅 속도, 좁고 답답한 봉안당 안도 그가 있을 만한 곳은 아닌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그는 내가 아무런 준비도 해놓기 전에 너무 갑자기 떠나버렸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었다. 그가 며칠을 머물렀던 병원의 영안실 냉동고는 가장 구석자리였고 나는 하루도 더 거기 그를 놓아두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수목장을 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었다. 뻔한 살림에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긁어모아 그의 장례를 치르고 근처 봉안당에 겨우 그를 모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래 놓고도 마음은 좋지 않았다. 사방이 30센티는 되나 싶은 봉안당 안에 그를 모셔놓고 돌아서자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준비해서 좋은 곳으로 다시 모시자고 나 스스로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문득 그러고 보니 며칠 후면 초파일이라는 게 생각났다.


그와 나는 딱히 불자는 아니었다. 아니, 그 어떤 종교의 신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와 나는 코로나가 이렇게 성행하기 전 당일치기로 여기저기를 여행하면서 근처에 이름난 절이 있으면 꼭 들러 대웅전에서 절을 한 번 하고 지폐 한 장이나마 불전함에 넣고 나왔다. 그냥 이곳을 돌보시는 분이 있다면 우리도 같이 좀 돌보아주시기를, 뭐 그렇게 빌었던 것 같다. 그렇게 둘러본 절 중에 해동 용궁사가 있었다.



그와 나는 둘 다 고향이 부산이다. 그러나 정작 부산에 살 때는 해동 용궁사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고, 그곳에 가 본 것은 고향을 떠나고도 20년 가까이가 지난 후였다. 도량 바로 앞으로 바다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그 절을 그는 매우 마음에 들어 했었다.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준다는 속설도 소원을 몇 가지 빌든 무조건 다 들어준다는 말보다 뭔가 리얼리티가 있어서 오히려 믿음이 가지 않느냐는 말도 했었다. 그를 위해 연등을 단다면 꼭 거기여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인터넷을 뒤져 용궁사에 전화를 했다. 친절한 목소리의 보살님이 전화를 받았다. 며칠 전에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극락왕생을 빌고 싶습니다. 보살님은 얼마나 애통하시냐는 위로의 말과 함께 연등을 접수하는 방법을 안내해 주셨다. 나는 그 말대로 그의 이름과 내 이름, 살던 집의 주소 등등을 보내고 등 값을 입금했다.


그와 나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가정사가 복잡한 사람이었고 너까지 내 복잡한 삶에 말려들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이렇게 홀연히 떠나버린 지금, 그가 나의 짝이었다는 사실은 이 세상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경찰서에 가서 검시 필증을 뗄 때도, 화장 비용을 치를 때도 나의 자격은 그저 '동거인'일 뿐이었다. 그러던 나는 그가 떠나고 나서 그의 극락왕생을 비는 영가등 아래에서야 그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


그의 영가등이 달릴 곳은 와불상이 있는 광명전 내라고 들었다. 부처님이 누워 계신 곁에서 그 또한 한 자락이라도 편히 누워 쉴 곳이 허락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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