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나는 괜찮다. 이만하면.

-131

by 문득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할 일을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아 글 한 타래를 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쓸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과거에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볼 때가 있다. 그중엔 아주 가끔 이 날은 글빨이 좀 괜찮았네 하는 생각이 드는 글도 있고 더러는 무슨 이런 이야기를 창피한 줄도 모르고 인터넷에 썼을까 읽는 분들이 뭐라고 생각하셨을까 싶은 생각에 낯이 뜨거워지는 그런 글들도 있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지나간 내 글들을 돌이켜 보는 건 술이 깨고 난 다음날 아침 숙취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내가 간밤에 술에 취해 무슨 짓을 했던가를 돌아보는 일에 가깝다. 평소에 꼰대질을 일삼던 상사의 멱살을 잡진 않았는지, 헤어진 전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해 온갖 궁상스런 말들을 늘어놓진 않았는지, 택도 아닌 객기를 부리며 그 자리의 음식값을 내가 계산해 버리진 않았는지 하는 것들을 되짚어보는 뭐 그런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나는 장장 130편에 달하는 내 글을 통해 내가 꾸준히 반복하고 있는 말 한마디를 별로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괜찮다. 이만하면 나는 괜찮다." 그 말은 정말로 괜찮아서 하는 말이 아니라 괜찮아야 한다는 일종의 자기 암시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처음엔 이런 엄청난 일을 갑작스레,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맞닥뜨린 것 치고는 괜찮다는 식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내 인생의 절반 이상 모든 것을 공유하며 살았던 사람을 하룻밤 사이에 잃고, 그런 것 치고는 나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이상한 생각도 안 하고 살고 있으니 이만하면 괜찮다는 식이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가자 혼자 남겨진 나날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렸고 이제부터는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하든 혼자라는 외로움에 슬퍼졌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그래도 이만하면 나는 꽤 괜찮게 버티고 있는 편이라고, 참 답지 않게도 내가 하는 일에 지극히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그런 흔적들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쓰게 웃었다. 그건 그냥 나는 괜찮다는 끝없는 자기 암시였고 괜찮아야 한다는 끊임없는 발버둥이었다. 그가 떠난 지 다섯 달 째가 되어가는 지금, 그리 멀지 않은 한 달 혹은 두 달째가 되던 무렵에 쓴 글을 읽어도 이런 생각이 드는데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을 읽어보면 더하겠지.


'괜찮다'는 말은 요즘 때아닌 내 인생의 화두가 되었다. 괜찮다는 건 무엇일까. 어느 정도가 되면 괜찮은 것이고, 어느 정도가 안 되면 괜찮지 않은 것인가. 그가 떠나기 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 괜찮은 것이라면 과연 내게 그런 것이 가능하긴 할까. 그런 게 불가능하다면, 나는 이제부터 아주 다른 내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생각들에 잠시 넋을 놓다 보면 이 괜찮다는 말 혹은 상태는 이 세상에서 내게서 가장 멀리 있는 어떤 개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적지 않은 경우에, 이런 상념들은 어쩌면 나는 영영 괜찮아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결론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그렇게도 생각한다. 사람은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런 식으로 괜찮다, 괜찮다를 끊임없이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로 괜찮아지는 날이 오기도 하지 않을까. 그 괜찮다는 게 어떤 모습일지, 어떤 상태일지까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래서, 오늘도 쓴다. 나는 괜찮다. 이만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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