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겨울의 일은 겨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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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뭔가 살아있는 걸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그가 떠나기 전부터 했었다. 강아지나 고양이쯤 가버리면 그건 너무 버라이어티한 일이 될 것 같고(아이 하나를 키우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정성을 필요로 한다고 하니까) 하다 못해 요즘 집에 하나씩은 다 있다는 공기 정화 식물 같은 거라도 어떻게 하나 들였으면 하는 생각을 몇 번 내비쳤지만 그때마다 그는 웃으면서 그거 들여놓으면 그 녀석 뒤치다꺼리까지 내가 다 하게 될 거라 싫다고 대답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결국은 그렇게 될 것 같아 나는 그를 더 조르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가 떠난 후, 나는 자의로 하나 타의로 하나 화분 두 개를 들여다 내 손으로 키우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창문에 내려진 블라인드를 걷고 창문을 여는 것이다. 그리고 비몽사몽간에 방 안에 밤새 들여놓았던 화분 두 개를 들어다 창틀에 올려놓는다. 그 순간 볕이 나고 있으면 오늘은 날씨가 좋네 하고, 날씨가 궂으면 오늘은 날씨가 별로라 볕 쬐기가 힘들겠네 하고 식물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것만으로도 하루의 날씨를 대하는 나의 태도 자체는 많이 달라진다.


다육이는 최소한 이쯤 되면 분갈이를 과연 맞게 한 것인가에 대한 걱정은 그만해도 되지 않겠나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아래쪽 잎부터 하엽이 지면서 말라가서 나를 신경 쓰이게 하던 그 버릇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키가 제법 자랐고 나 같은 둔한 인간의 눈에도 뚜렷하게 새 잎이 나고 그 잎이 단단하게 여물고를 반복하고 있다. 물은 한 달에 한 번만 주는 거라는 꽃집 아가씨의 말만 믿고 정말로 매달 초에만 한 번씩 물을 주고 있으니 우리 집에 오고 난 후 이 녀석이 내 손에 물을 얻어마신 건 네 번이 고작이다. 그 외에 다른 비료나 영양분 같은 것은 한 번도 챙겨주지 못했다. 그 어설픈 분갈이를 견디고 정말로 무사히 뿌리를 내려 준 것이라면 이 녀석에게는 너무너무 고마운 일이다. 이 녀석을 데려오던 무렵의 내 마음은 이별과 상실에 대한 내성이 0도 아닌 마이너스의 상태였기에, 그때 이 녀석이 무사히 내 곁에서 살아남아주지 않았더라면 억지로 붙들고 있던 내 마음의 평형은 그로 인해 깨졌을지도 모르기에.



5월 말에 데려온 무화과는 다육이처럼 눈에 띄게 새 잎이 난다거나 키가 자란다거나 하진 않는다. 이 녀석은 처음부터 어느 정도 수형의 틀이 잡힌 채로 우리 집에 왔고, 나는 그저 일정을 적는 캘린더에 일일이 체크를 해 가며 나흘에 한 번, 혹은 닷새에 한 번 정도 물을 주고 있을 뿐이다. 식물에게는 건조보다 나쁜 것이 과습이라는 말을 듣고 중간에 비가 오는 날이 있으면 그 날짜만큼 물주는 날을 뒤로 미루고 있다. 무화과는 비교적 병충해에도 강한 나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라, 널찍한 이파리 뒤쪽과 줄기 같은 곳에 벌레가 꼬인 흔적이 없는지를 가끔 살펴본다. 이 녀석의 줄기 끝에는 작은 무화과 열매가 열려 있다. 그냥 웃고 넘겼는데 얼마 전 살퍄보니 처음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을 때에 비해 제법 메추리알만 하게 크기가 커졌다. 예쁜 꽃이 핀다는 화분도, 공기 정화를 해준다는 화분도 다 제쳐놓고 하필이면 무화과를 산 것은 무화과가 그의 탄생화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과연 저게 다 익으면 먹을 수 있기나 한 걸까 싶은 그 쬐끄만 열매가 그지없이 고맙다. 나의 어설픈 정성에 이런 식으로 보답을 해주는 것 같아서.



오늘 아침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러다 겨울이 오면 그때는 어떡하지. 둘 다 대충만 봐도 추운 곳을 잘 견딜 것 같은 녀석들은 아닌데, 그때도 창가에 내놓아도 되는 건가. 그러나 방 안에 계속 두면 볕을 너무 못 봐서 안 되지 않을까. 무화과는 이파리만 다 떨어뜨린 채 월동을 하고 봄이 되면 새 잎이 난다고 한다. 아마 내년 봄이 되어 새 잎이 나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의 기쁨이 있겠지. 그러나 다육이는 그렇게 다 시들어버리면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은데. 그런 때 이른 걱정을 한참이나 하다가, 아이고 올여름이나 일단 무사히 넘기자고, 그런 말로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날들에 대한 걱정을 털어버렸다.


그래서 일단, 겨울의 일은 겨울에 걱정하기로 한다. 내년, 내후년이 아니라, 그가 없는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지금 당장이 내겐 버거운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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