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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떠나보낸 지 넉 달이 지나 다섯 달 째가 되어간다. 슬프지만 그가 떠나가도 시간은 흘러가고, 남아있는 내 인생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그 사이 내 감정의 스펙트럼도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생각건대 처음과 같은 비통함과 슬픔은 이젠 많이 엷어졌다. 처음 한 동안은 밤에 침대에 누우면 그가 쓰던 오른쪽 절반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벽 쪽으로 붙어서 잤다. 자고 일어났을 때 내가 침대 한 복판에 네 활개를 다 펴고 잠들어 있다면. 그래서 더 이상 그 자리에 그가 없다는 사실을 눈 뜨자마자 절감하게 될 것이 너무 무서웠다. 요즘도 물론 나는 침대 하나를 혼자 다 쓰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젠 그렇게까지 기를 쓰고 벽에 붙어서 자지는 않는다. 가끔은 아무렇게나 뻗은 다리가 제법 그의 자리 쪽을 침범하고 있을 때도 있다. 뭐 어쩌라고. 불만이야? 이젠 그렇게 중얼거리는 여유 아닌 여유도 조금 생겼다. 4월의 어느 날 옥죄는 심장을 견디다 못해 간 신경정신과에서 애도 반응은 통상 한 달 정도를 간다던 말을 듣고 이 고통이 한 달만에 다 없어진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는 말을 끝도 없이 중얼거리며 울면서 걸어오던 기억이 생생한데, 나 또한 그 의사 분의 데이터에 포함되어 있던 아주 범속한 케이스 중의 하나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의 부재에 대한 감정은 슬픔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걸 요즘 들어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그에 대해 어떤 사람이라는 인상을 갖고 계신지, 가끔 그게 궁금할 때가 있다. 그는 일단 뭘 해도 대충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깔끔하게, 잘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뭘 저런 것에 저렇게까지 목숨을 거나 싶을 정도로 매사에 꼼꼼했다. 매일 청소를 하고 침대를 정리했고 밥을 하고 나면 기름이 튀어 찐득거리는 가스 레인지를 꼼꼼하게 닦았다. 욕실의 타일 틈에 물때가 끼지 않도록, 그의 말마따나 별이 보일 만큼 용을 써 가며 일일이 욕실을 치웠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를 내심 못마땅해했다. 같이 살을 부대끼고 사는 사람이 그러고 있으면 옆에 가서 뭐라도 거들어야 했기 때문이었고 나는 그런 일에 시간을 들이는 게 너무 귀찮고 아까웠다. 저런 일들, 그냥 매일 하는 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건 한 달에 한 번 정도 몰아서 해도 별로 크게 표도 안 날 텐데. 나는 내심 늘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인생 피곤하게 사는 타입이라고도.
그리고 그간 한 그런 생각들에 대한 벌이라도 받듯, 그가 한 모든 일들은 이젠 내 차지가 되었다.
물론 지금 우리 집 어딘가에서 그가 보고 있다면 저거 저렇게 하면 하나마나인데 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것이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은 그를 흉내 내는 것일 뿐 그 밀도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그가 하던 일들의 반의 반만큼도 비슷하지 않다. 실제로 그가 뭔가를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돕겠답시고 뭐라도 깔짝거리고 있으면 그는 웃으면서 놔두라고, 네가 어설프게 건드려 놓으면 내가 두 번 세 번 다시 해야 하니 그냥 나 혼자 하는 게 낫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나는 그의 그런 태도를 핑계 삼아 뭔가를 쓸고 닦고 치우고 가꾸는 모든 일들을 다 그에게 떠밀어 버리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러지 말걸, 하는 후회를, 나는 요즘에야 한다.
그런 귀찮은 일들에 열중하는 자신을 내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가 몰랐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는 어쩌면, 내가 그런 일들을 양심의 가책 없이 하지 않아도 되게끔 그런 식으로 나를 떼어내 준 게 아닐까. 그 귀찮은 일들을 혼자 다 하면서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심 서운하고 언짢지는 않았을까. 나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기까지 그는 혼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결국 이렇게 될 거라면. 내가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거였다면 그때부터도 같이 좀 할 걸. 혼자 다 하게 내버려 두지 말걸. 세상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떼돈을 벌만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나는 왜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일을 시간을 내 같이 하는 것에 인색했을까. 그런 것들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들. 그런 감정들이 녹지 않은 설탕처럼 내 가슴 아래 잔잔히 가라앉아있다가 울컥 스며 나오곤 한다. 그리고 그 편이 몇 배는 아프다. 슬픔보다. 애통함보다. 서러움보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가면 나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된다고 해서 가슴을 찌르는 이 미안함과 후회까지 사라질까. 별로 그럴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되씹으면 되씹을수록 단단해지는 그런 종류의 가시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대답이 없는 그와의 카톡에 쓴다. 제발 꿈에라도 한 번 다녀가라고. 다른 건 없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더 잘해주지 못해서. 더 살갑지 못해서. 더 다정하지 못해서. 그런 나여서 미안했다고. 미안하다고. 그래서 지금 가슴을 치며 후회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