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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의 나는 매우 잘 자는 사람이었다. 어딜 가서든 머리만 땅에 닿으면 10분 내로 속 편하게 곯아떨어지는 타입이었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이 오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은 내겐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러던 나는 언제부턴가 새벽에 한두 번씩, 꼭 잠에서 깨게 되었다. 이건 그가 떠나기 전부터도 그랬다. 그가 떠나던 그 새벽에도 나는 한 번 잠에서 깼었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 목이 말라 물까지 마시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때 한 번만,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들여다봤더라면 뭔가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자던 중에 한 번은 깨는 습관은 요즘도 그렇다. 틀어놓고 잠드는 텔레비전의 소음이 귀에 거슬려서이기도 하고 끄는 것을 깜박하고 잠든 취침등의 불빛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난 몇 주간은 주로 '더워서'였다. 알 수 없는 불쾌감에 잠에서 깨 보면 선풍기에서 뜨뜻한 바람이 흘러나오고 있거나 지나치게 높아진 습도에 온 몸이 찐득거리고 있거나 배어난 땀에 머리칼이 목덜미에 들러붙거 있어나 하는 등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짜증스레 혀를 차고 에어컨을 켠다. 그러나 한 번 깨버린 잠은 좀체 다시 들지 않는다. 요즘 안 그래도 수면시간도 줄었는데 그나마 이렇게 토막이 나버리면 내일은 어떡하냐는 짜증을 한참이나 내다가(여기서 중요한 것은 핸드폰을 집지 않아야 한다. 시간을 본다거나 날씨를 본다는 핑계로 핸드폰을 잡아버리면 다시 잠드는 일은 더 요원해진다) 짧으면 30분, 길면 한 시간 남짓을 뒤척이다가 다시 잠든다. 그러고 나서 일어난 다음날은 하루 종일 수면부족에 빌빌거리게 된다.
그리고 오늘 새벽, 나는 '선득해서' 잠에서 깼다.
아무렇게나 걷어차 놓은 이불을 잠결에 주섬주섬 주워 몸을 둘둘 말고 웅크리며, 나는 아 세상에, 이젠 선득해서 자다 깨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실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다섯 시 반이 조금 못된 시간이었다. 어차피 30분쯤 후면 일어날 시간이긴 하다. 나는 그 길로 그냥 잠드는 것을 포기하고 기껏 든 잠에서 깨 이불을 찾게 되는 오늘 아침의 공기에 대해 생각했다. 이제 정말로 여름이 다 간 건가 하는 성급한 생각도 함께. 참, 시키지 않아도 시간은 잘도 가는구나. 새삼스레 그런 생각을 했다.
날이 서늘해진다는 건 날이 더워진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감회가 있는 것 같다. 그가 떠난 후 날이 더워지기 시작할 때는 이런 스산한 기분까지는 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건 아마도 계절이 반환점을 돌아 올해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아무리 떼를 쓰고 부정해도 시간은 흐르고, 나의 시간과 나의 인생은 더 이상 그가 떠나간 그 순간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깨닫게 되기 때문에.
내 책상 위에 놓은 사진 속의 그는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있다. 겨울에 찍은 사진이기 때문이다. 짙은 회색 바탕에 검정색 가로 줄무늬가 있어서 그와 나는 농담 삼아 그 스웨터를 '고등어'라고 불렀다. 한참 날이 덥던 시기에는 그 사진을 쳐다보고 있으면 가뜩이나 더운 거 싫어하는 사람인데 덥겠다 싶은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의 날씨를 보니 이제 저 스웨터가 딱 맞는 날씨가 얼마 지나지 않아 올 테고 나는 좀 덜 안쓰러운 기분으로 그의 사진을 바라봐도 될 것 같다.
봄날만 가는 게 아니라 여름날도 간다.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나는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간다. 아마도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어서, 굳이 이런 식으로 보고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을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