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추석인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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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혼자 남겨진 후 뭔가를 먹고 싶다는 욕구 자체가 많이 줄어들어 버렸다. 예전엔 분명 뭔가를 먹는다는 건 살아가는 즐거움 중 하나였는데 그가 떠나고 난 후에야 나는 그 즐거움의 대부분이 그와 연결되어 있었던 감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혼자 마주 대하는 음식은 더 이상 내겐 즐거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씁쓸함 혹은 외로움이었고, 가끔은 '먹어치워야 할 무언가'였다. 그래서 요즘 나는 요거트 한 개와 구운 계란 두어 개, 커피 한 잔 정도로 저녁을 때우고 넘어가도 별반 큰 공복감을 느끼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이런 관계로 3주에 한 번 꼴로 미어지게 주문하던 마트 주문은 한 달에 두 번, 그나마 최소 주문 수량을 채우기 위해 온갖 머리를 쥐어짜 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주문의 대부분은 생수와 물티슈, 아침 대용으로 먹는 두유 등이 차지하고 있을 뿐 예전처럼 뭔가를 해 먹기 위한 식재료들이 잔뜩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이런 주문 두어 번이면 나는 별다른 아쉬움 없이 한 달을 먹고살 수 있다. 게다가 요즘은 꽃을 사러도 마트에 잘 가지 않는다. 금액은 조금 비싸지만 꽃의 종류와 선도 면에서는 꽃집에 가서 사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간만이었다. 뭔가를 사러 직접 마트에 가 본 것이.


그 사이 마트의 매대는 그야말로 추석 준비 모드로 바뀌어 있였다. 입구에서부터 따로 만든 특설 매대에 생활용품부터 식용유, 참치, 스팸, 각종 농산물까지 그럴듯하게 포장된 선물들이 잔뜩 진열돼 있었다. 그 광경에 잠시 넋을 빼앗겼다가 아, 하고 돌 터지는 소리를 냈다. 추석인가 보네. 날이 갑자기 선선해진 게 그래서 그런 건가.


음력으로 쇠는 날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직관적으로 날짜가 머릿속에 와닿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그래서 음력으로 쇠는 그의 생일을 미처 챙기지 못하고 넘어가 버린 적도 몇 번이고 있었다. 그래서 내게 추석은 매월 말일 달력을 넘기면서 어 이번 달이 추석이네 하고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엔 미처 그래 보기도 전에 마트의 선물 매대에서 미리 스포일러를 당하고 만 셈이다.


아주 오랫동안 그와 내게 추석은 그냥 '전 부치는 날'이었다. 딱히 인사를 가야 할 곳도, 지내야 할 제사도, 찾아가야 할 고향집도 없었던 우리는 추석 무렵이 되면 하루 날을 잡아 전과 튀김을 몇 종류 해서는 냉동실에 갖다 재어놓고 며칠을 먹었고 나름의 세레모니로 동네 떡집에서 사 온 송편을 쪄서 조청에 찍어 먹었다. 늘 그렇게 조촐하게 보내던 추석이었는데, 올해는 아마 그나마도 하지 않고 지나가겠지. 아마도 이제 내게 추석은 '갑에게서 며칠 연락이 오지 않는 날' 정도의 의미밖에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나 혼자 추석을 쇠겠답시고 전을 부치고 튀김을 할 기력도 용기도 의욕도 없다. 그래도 송편 정도는 조금 사다 먹어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혼자 먹을 거니 아주 조금만 사면 되겠지. 터지지 않게, 예쁘게 쪄진 것 몇 개는 따로 담아서 그의 책상에 놓아줘야겠다고도 생각한다. 집에 조청은 없지만 도대체 뭘 하려고 사 둔 건지 사양꿀이 조금 있으니까 거기 찍어먹으면 되겠지. 어차피 추석 연휴기 지난 13일은 그와 내가 챙기는 기념일 중의 하나고, 나는 그날 봉안당에 갈 생각이다. 추석 성묘는 그때로 퉁치면 될 일이고. 원래도 퍽 조촐한 추석이었지만 이젠 더 조촐해져 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쓴웃음이 났다.


갑자기 불쑥 궁금해진다. 거기 가서는 잘 지내는지. 내가 하는 이런 생각들을, 당신은 하지 않는지. 그리고 생각한다. 그럴 리가 없다고도. 아마 혼자 남은 내가 추석에 쫄쫄 굶고 앉아 손가락만 빨며 보내지 않을까 걱정이 미어지고 있으리라고도. 워낙에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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