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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ug 30. 2022

다들 참, 먹으려고 사는구나

-140

어제는 상담을 받는 날이었다. 언제나처럼 같은 시간에 집에서 출발해 버스를 타고(가장 가까운 정류장이 아닌 좀 떨어진 정류장에 서는 버스를 타는 것이 포인트다) 10분쯤 걸어가면 상담 예약 시간 10분 전 정도가 된다. 그 10분의 시간 동안 나는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할 건지, 과연 오늘은 울지 않고 상담실에서 나올 수 있을 건지를 생각해 본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대개 의미가 없다. 상담실 안에 들어가는 순간 내 입에서는 내가 미처 예상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대개 흘러나오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게 10분 정도 기다리면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브런치 알림이 와 있었다. 어제 올린 글이 조회수 천을 넘겼다는 알림이었다. 아, 또 어딘가 걸렸구나. 그냥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내 글은 평범한 날에는 조회수 100 남짓, 이런 식으로 어딘가에 걸려 올라가면 2, 3천 정도가 찍힌다. 아번에도 그렇겠거니. 뭐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제 내 브런치는 지난 4월에 만든 후 처음으로 일일 조회수가 다섯 자리를 찍었다.


이런 식으로 포털의 메인에 걸려 올라간, 이를테면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될 만한 글들이 뭐가 있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제일 처음엔 전기밥솥에 딱 1인분만큼의 밥을 하기가 어렵다는 글이었다. 도대체 무슨 요리를 할 때 쓰려고 산 건지 알 수 없는 죽순 통조림 이야기, 초계국수 이야기, 쌀국수 이야기 등등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그 화룡점정이 어제 올린 소금빵과 버터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야, 사람들 참 다들 먹는 거 좋아하고 먹는 거에 관심 많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웃었다.


하나도 즐겁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요즘 나의 일상들을 브런치에 마치 전시하듯 꾸역꾸역 쓰는 이유 중에는 그런 것도 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서 지금 내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번이라도 다시 돌아보셨으면 해서. 그 사람이 거기 있는 건 전혀 당연한 일도 아니고 평범한 일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내게 일어난 일이 언제고 여러분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사람은 겪어 보기 전에는 모르는 존재니까. 불과 다섯 달 전의 내가 그러했듯이.


그래서,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에 조그만 라벨이라도 하나씩 달아놓으셨으면 한다. 그 사람이 좋아하던 것, 그 사람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내가 워낙 좋아해서 같이 먹어주던 것, 아무리 애를 써도 둘 다 결국은 좋아할 수 없었던 것, 어느 특별한 날 같이 먹었던 것, 길고 지루한 다툼이 끝나던 날 먹었던 것 하는 식으로. 추억이란 별 것이 아니고, 그런 식으로 꼬리표를 붙인 것들이 남는 것이므로.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이 떠나가고 그 음식들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어도, 그날 그런 식으로 붙인 꼬리표만은 남기 때문에.


나는 오늘 게살수프를 해먹을 생각이다. 게살을 쭉쭉 찢어 굴소스와 파를 넣고 마지막에는 계란을 풀어 한 바퀴 휙 돌려서 끓이는 중국식 탕 요리다. 세상에 이런 음식이 있는 줄도 몰랐던 나는 어느날 그가 해준 이 음식을 단번에 좋아하게 되었고, 그가 떠나간 후에도 몇 번 그가 북마크 해놓은 레시피를 따라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먹을 때마다 그의 생각을 한다. 아마 오늘도 그럴 것이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며칠 사이 간사하리만큼 서늘해진 날씨 덕분에 오늘은 에어컨도 선풍기도 필요 없겠지.


무균실 안에서만 살 수 있는 중환자처럼, 나는 그가 남겨준 추억과 기억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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