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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ug 31. 2022

±500그램

-141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창문을 여는 것이다. 그리고 날씨가 맑으면 아 날씨 좋다, 흐리거나 비가 오면 아이고 날씨 꿉꿉하네 하는, 아무도 듣지 않는 말 한마디를 한다. 밤새 들여놓았던 화분 두 개를 들어다 창가에 얹어놓은 다음으로 하는 일은 체중을 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덜 깬 잠이 확 달아나는 경험을 한다. 체중이 줄어있으면 나름의 성취감에 뿌듯해서, 늘어 있으면 약간의 실망감에.


살을 빼기 위해 특별한 '활동'을 하고 있진 않다. 그냥 그가 있을 땐 웬만하면 몰아서 하던 외출을 요즘은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미루지 않고 한다는 정도일까. 그리고 코로나가 한침 극성이던 무렵 기준 일주일에 한 번도 안 나가던 집 밖을 요즘은 상담이니 백중이니 무엇이니 하는 핑계로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나가게 되었다는 것 정도다. 그 반면에 먹는 건 그가 있을 때 기준 절반에서 3분의 1 정도로 준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도 앞자리가 바뀔 정도로 빠져버린 체중은 그 영향이 크겠지. 앞자리가 바뀌고 전에 입던 옷들이 하나도 맞지 않아 조금씩 새로 사고 있는 정도까지 되었는데도 아직도 내 체중은 소위 정상 체중의 범주에 들지 못했다. 도대체 그간 얼마나 나를 방치하고 살았던 건지, 가끔은 심각하게 반성하게 된다.


다이어트 아닌 다이어트를 다섯 달 가까이 진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깨닫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은 몸은 자판기가 아니어서 바로바로 결과물이 나오진 않는다는 것이다. 전날 많이 걷고 적게 먹었다고 해서 다음날 바로 눈에 띌 만큼 살이 빠지지 않고, 전날 뭔가를 좀 많이 먹었다고 해서 다음날 바로 체중이 불어나지도 않는다. 이 사실은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실제로 느끼고 인정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지금도 완전히 이 사실을 납득한 것 같지는 않다. 요즘도 나는 좀 많이 움직인 다음날 체중계 앞에서 나는 잠깐 기대에 부풀었다가 별 변화가 없거나 심지어 조금 불어있기까지 한 숫자를 발견하고 시무룩해지기가 일쑤다. 물론 그 반대급부로 전날 다이어트에 썩 도움이 되지 않는 음식(이를테면 피자라든지)을 먹고 난 다음날도 각오했던 것보다 그리 크게 늘어있지 않은 몸무게를 확인하게 되긴 한다. 그 과정을 거쳐 겨우 내가 받아들인 것은, 내 체중에서 500그램 정도는 언제라도 불어날 수 있고 반대로 언제라도 빠질 수 있다는 사실 정도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올라간 체중계의 숫자가 그 범주 안에 있는 날은 그냥 무덤덤하게 쓱 지나칠 수 있게 되었다.


음식을 먹는 건 그 열량보다도 '시간'이 중요한 것 같다. 조금 걱정되는 음식이라도 점심때쯤 먹으면 다음날 체중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 반면에 늦은 시간 밀려드는 공복감을 견디지 못하고 뭐라도 한 입 집어먹은 날이면 어김없이 다음날 체중계의 숫자는 불어나 있다. 어제는 그런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오늘 아침 재 본 체중은 또 어김없이 어제 대비 딱 500그램이 늘어나 있었다. 이게 그 정체기라는 건가. 슬슬 완만해지는 체중의 감소폭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수치적으로 뭐가 어떻게 나아졌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의 나는 다섯 달 전보다 신체적으로는 나아지긴 했을 것이다. 그가 떠난 후 따라갈 각오를 하지는 못할지언정 뒤늦게 내 몸을 돌보기 시작한 이런 걸 그는 뭐라고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뭐라도 해보려는 것을 애틋하게 생각할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이 떠나고 난 후에야 이것저것 시작하는 것을 보고 약간의 배신감 같은 걸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해해 주라. 그래서 오늘도 그렇게 생각한다. 예전엔 오빠가 있었지만 이젠 아무도 없지 않냐고. 내가 나를 안 챙기면 아무도 내 생각 같은 건 해주지 않는데 어떡하겠느냐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오빠가 이제 그만 고생하고 가자고 나를 데리러 올 때까지는 건강하게 살아야지 않겠느냐고. 그는 아마 이해할 것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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