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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Sep 01. 2022

선물

-142

우리 집의 무화과 화분은 정확히 지난 5월 31일에 우리 집에 왔다. 같이 온 가드닝 픽에 날짜를 적어두었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집에 온지는 꼬박 석 달이 된 셈이다.


화분을 하나 들일까 하는 것은 그의 삼우재를 앞두고 봉안당에 둘 꽃을 사러 갔다가 하나 얻어온 다육이를 기르면서 하게 되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은 공허하고 상처 난 마음에 꽤 많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 할 줄도 모르는 분갈이를 어설프게 해 놓고, 이 녀석이 나의 어설픔 때문에 혹시나 죽어버리는 건 아닌지, 꽃집에서 얻어오던 상태 그대로 1회용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얇은 플라스틱 모종용 화분에 그냥 그대로 두었어야 하는 건 아닌지, 혹시나 물이 모자라진 않는지,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며 일희일비하는 그 과정이 내게는 하나의 치유였다. 그래서 이왕 이럴 거라면 다른 화분도 하나 들여서 같이 키워볼까 하는 간 큰 생각을 했던 것이다.


당연히 제일 먼저 눈이 갔던 건 예쁜 꽃이 피는 화분들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좋은 향이 난다는 화분들이었고 공기정화가 된다는 화분을 들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흘러갔다. 그러다가 문득, 그가 있던 나날에는 몰랐던 그의 탄생화가 무화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의 선택지는 없어지고 말았다. 나는 인터넷의 온갖 곳을 뒤져 그다지 크지 않은 자그마한 무화과 화분을 찾았고 어느 날 그런 나의 검색 패턴을 읽어낸 인터넷 포탈의 AI가 딱 내가 찾던 무화과 화분 상품을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나는 홀린 듯이 결제를 했고, 다음날 무화과 화분을 받았다. 그리고 4, 5일 만에 한 번, 물 받침대에 물이 가득 차오를 만큼 흠뻑 물을 주라는 판매자님의 메시지를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지키고 있다.


그 무화과나무의 줄기 중간에 열매가 달려 있었던 건, 처음 올 때부터 그랬던 건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찍어놓은 사진에도 커다란 잎사귀에 교묘하게 가려져 열매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찍혀 있지 않다. 다만 처음 나무를 받고 샅샅이 살펴보았을 때 특별한 감흥은 없었던 기억으로 봐서 그때는 내 눈에 열매라고 인지할만한 무언가가 열려 있지 않았으리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그러던 무화과나무는 6월을 지나면서 줄기 한 중간에 제법 손톱만 한 뭔가를 맺기 시작했다. 그게 열매라는 것을, 나는 7월 초의 어느 날 물을 주면서야 알아챘다. 처음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이 쥐콩만한 것도 꼴에 나무라고 열매 비슷한 걸 만드는구나. 딱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손톱만 하던 열매는 점점 자라, 제법 메추리알만 하게 커졌다. 신기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 내가 녀석을 위해 해 준 거라고는 아침저녁으로 우리 집 안에서 그나마 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아 녀석을 옮겨놓는 것과 4, 5일에 한 번씩 물을 주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그 흔한 영양수액 한번 꽂아주지 않았는데도 녀석은 그렇게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키워갔다.


그리고 며칠 전 날이 서늘해졌다고 느끼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설익은 대추마냥 새파랗던 그 열매에는 익히 무화과라고 하면 떠올리는 불그스름한 색깔이 돌기 시작했다. 열매의 색깔이 변하면서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게 익는 건지 썩는 건지, 이대로 놔두면 되는 건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도시 촌놈인 나는 아침저녁이 다르게 색깔이 변해가는 열매를 보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리고 어제, 녀석은 그 열매를 떨어뜨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는 듯이. 이봐 인간. 그동안 좋지도 않은 솜씨로 날 시중드느라 고생했어. 별 거 아니지만, 너 줄게. 마치 그렇게 말하기라도 하듯이. 나는 그 조그만 열매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한참을 웃었다. 나 먹으라고 주는 거야? 고마워. 잘 먹을게.


어제 점심은 그저께 게살 수프를 끓여먹고 남은 게맛살을 쭉쭉 찢어 게살볶음밥을 해서 먹었다. 그리고 그 후식으로, 나는 무려 내가 손수 키운 무화과를 씻어다가 반으로 쪼개 과육을 빨아먹었다. 워낙 조그만 과실이어서 반으로 쪼갠 것을 후릅 하고 한 번 빨아 마시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열매 안에도 깨알 같은 씨들이 들어있었고 익히 아는 무화과의 그 새콤달콤한 맛이 뚜렷하게 났다. 너무 신기하고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캘린더에 체크해 둔 날짜에 따르면 원래는 어제가 물을 주는 날이었다. 그러나 어제는 날씨가 너무 궂어서 물을 주지 않았고, 화창하게 갠 오늘 아침에 어제 못 준 물을 가득 주었다. 달이 바뀐 후 처음 물주는 날은 한 달에 한 번만 물을 주는 다육이에게도 같이 물을 주는 날이어서 오늘은 두 녀석 모두에게 물을 주었다. 잎사귀 여기저기 물방울을 매단 채 쨍한 볕을 받고 서 있는 모양을 보는 건 꽤 흐뭇한 일이다. 이럴 때만큼은, 내가 저 녀석들을 돌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녀석들이 나를 돌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위에도 썼지만 무화과는 그의 탄생화다. 그러니까, 어제 그 조그만 무화과는 아마도 그가 내게 주는 선물일 것이다. 애쓴다고. 욕본다고. 고생 많다고. 다시 만날 그날까지 부디 지치지 말고 힘내 달라는 뜻에서. 참, 손톱만한 무화과 한 개에 온갖 것을 다 갖다붙인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반박은 받지 않으려고 한다. 내 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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