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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Sep 04. 2022

다소 급작스럽게

-145

매월 두 번째 주 주말엔 그를 만나러 봉안당에 다녀온다는 나름의 일정을 세워놓았다. 하필 두 번째 주 주말인 것은 무슨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경험상 매월 첫 주는 하는 일 없이 정신이 없고, 그래서 주중에 다 못한 일이 주말까지 밀리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에 그것까지를 정리해 놓고 조금 마음이 편안해지는 두 번째 주 주말 정도에 아침 일찍 다녀오는 것이 그나마 심적으로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 달은 다음 주 주말 정도에 다녀올 예정이었고, 그다음 주에는 그와 내가 따로 챙기던 기념일이 있어 일주일 사이에 두 번을 다녀올 예정이었다.


4월 5월 두 달간은 봉안당에 퍽 자주 갔었다. 대충만 생각해도 2주에 한번 꼴로는 갔었고 가끔 일정이 꼬이는 때는 일주일 만에 한 번씩도 갔었다. 차 안에서 그의 사진을 찾아내 재인화를 하고, 나는 종이 프레임에 사진을 넣어 그의 봉안당에 갖다 놓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날은 어버이날 근처였고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시기라 방역 등 안전상의 문제로 봉안당 개방을 해주지 않는다는 봉안당 측의 안내를 뒤늦게 받고 나는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그냥 돌아와야만 했다. 그래서 그 사진 한 장을 갖다 놓으러 일주일 후에 다시 봉안당을 찾았다. 뭐 그런 식이었다. 그 외에도, 조금만 좋은 일이 생겨도 봉안당에 갔고 조금만 힘든 일이 생겨도 봉안당에 갔다. 자주 찾아가면 가신 분이 기뻐하실 거라는 점사 보던 분의 말도 있었고.


그러던 것이 49제를 지내고 난 후로는 조금은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그전까지는 이래저래 가야 할 일이 많았던 거고, 이제는 그럴 일들이 많이 줄어들어 원래 계획대로 우리가 챙기던 날과 한 달에 한 번 정도 간다는 일정만이 남은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사실 내심 두렵기도 하다. 내가 어느샌가 무뎌지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의 부재를 이제 그만 납득하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아니면 찾아 주는 사람도 없는 곳에 혼자 남겨진 그는 뜸해진 내 발걸음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그런 걱정도 한다. 그는 그런 걸로 서운해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예전의 내가 워낙 살갑지 못했었기 때문에.


오늘 새벽, 나는 그를 꿈에서 만났다. 그러나 그 현몽은 내가 바라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고 그 또한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을 한 마디도 해주지 않았다. 무딘 돌덩어리로 가슴 한 복판을 짓누르는 둔한 통증만을 남기는 그런 꿈이었다. 그 꿈을 꾸고 나는 한 시간쯤 일찍 잠에서 깼다. 더 자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아, 나는 컴컴한 새벽의 어둠 속에 일어나 앉아 멍하게 허공만을 한참 쳐다보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냥 오늘 갔다 와야겠다고.


내게도 내가 짜 놓은 나름의 일과가 있다. 이런 식으로 오전 시간을 통째로 날려버리면 당장 내일까지 끝내야 하는 일거리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 일정이 꼬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글을 다 쓰는 대로 옷을 주워 입고 봉안당에 다녀올 생각이다. 가서 그의 얼굴을 보고 그간 잘 지냈는지, 어떻게 지냈는지를 물어보고 오늘 새벽의 그 심란한 꿈은 도대체 뭔지를 좀 물어보고 와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이렇다 할 대답조차 들을 수 없겠고 오전 시간을 그런 식으로 다른 데 써버린 대가로 오늘 오후는 일요일이 다 가는 걸 아쉬워할 틈조차 없이 번잡하겠지만. 그래도.


그냥 달도 바뀌었는데 왜 날 만나러 오지 않는 거냐고 부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거라면 오히려 좋은 일이다. 그는 워낙에 그런 걸로 투정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제 내게는 그가 그런 식으로 부를 때 주저없이 달려가 그를 보고 오는 것밖에는 딱히 해줄 수 있는 일이 남아있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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