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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Sep 07. 2022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

-148

태풍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어제 하루 정도는 후폭풍이 남아 종일 비가 오고 날씨가 흐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비는 이미 어제 아침부터 그쳐 있었고 오후가 가까워오니 숫제 날이 쨍하게 개기 시작했다. 급작스레 바뀐 점심 메뉴에 필요한 식재료가 있어 집을 나섰다. 하루 종일 내린 비로 군데군데 물이 고이고 나뭇잎들이 떨어져 있는 걸 뺀다면 언제 태풍 따위가 불었느냐는 듯 날은 천연덕스럽게 개어 있었다. 나는 또, 내가 태풍에서 한 발 빗겨 난 윗동네에 살고 있음을 실감했다.


저녁이 오고, 창가에 내다 놨던 화분들을 들이려다가 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섰다. 맑게 갠 하늘 위로 반달을 조금 지난 달이 마치 그 자리에 오려 붙이기라도 한 듯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지난여름 내내 밤이면 창문을 닫고 블라인드까지 치고 에어컨을 틀고 살아서 그랬는지 이 시간에 하늘에 뜬 달을 본 건 최소한 몇 개월만의 일인 것 같았다. 달이 저렇게 또렷하고 선명하다니, 아 하긴 며칠 있으면 추석이잖아. 추석은 음력으로 8월 15일이고 보름달이 뜨는 날이라는 그 당연한 사실이 매우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오빠, 잘 있냐. 그냥 그렇게 물어봤다. 그 달을 향해서. 달에는 방아를 찧는 옥토끼도 선녀님도 살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수십 년도 전에 밝혀졌지만. 떠나간 그가 저 망망한 하늘 어딘가에 있다면 아마도 저 달일 것 같은 생각에.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내가 보고 싶진 않은지. 마치 잠시 어딘가에 출장이라도 간 사람과 전화통화를 하듯 나는 그런 것들을 주절주절 물었다. 나? 나는 잘 있지. 이만하면 잘 있지. 가끔은 오빠가 보기에 괘씸하겠다 싶을 만큼, 저거 너무 잘 지내는 거 아니야? 싶은 생각 들만큼 잘 지내지. 아주 완벽하다고는 못하겠지만.


나는 어쨌든, 내 손으로 모든 걸 놓고 내 발로 오빠를 따라가는 건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여기서 힘껏 살아보려고 한다고. 그렇지만 오빠가 거기서 지켜보다가 내 남은 앞날이 너무나 고생뿐이라 눈에 밟히거든, 혹은 나 사는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저거 저렇게 놔두면 안 되겠다 싶거든 언제라도 데리러 오라고. 기꺼이 버선발로 따라나서겠다고. 뭐 오래야 걸리겠냐. 그런 말을 하면서 웃었다. 지난 4월인지 5월인지 무렵에도 무심코 열었던 창문 밖으로 뜬 달을 향해 비슷한 말을 중얼거리다가 울음이 터져서 숫제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어제는 울지 않았다. 창 밖으로 비치는 달과 눈이라도 맞추듯, 아주 오래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

 

방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등려군의 노래를 들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간만에 보는 맑은 밤하늘에 밝은 달이어서. 저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는 밤이어서. 내 마음 떠나지 않고 내 사랑도 변치 않으니 저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한다고(我的情不移 我的愛不變 月亮代表我的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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