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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Sep 08. 2022

미련의 끝

-149

9월에 접어들면서 나는 집안의 모든 쿠션 커버와 베개 커버를 바꿨다. 그러면서도 여름 내내 덮던 홑이불만은 아직도 넣지 못한 채 그냥 쓰고 있었다. 이유는 별 게 아니다. 이러다 갑자기 훅 더워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새벽 다섯 시 무렵 '추워서' 잠에서 깬 지는 벌써 며칠이나 되었다. 새로 잠이 들었다가는 늦잠이 들 게 뻔하고 덜컥 일어나 앉기에도 아까운 그 시간을, 나는 쌀쌀해진 새벽 공기를 피해 얇은 이불을 둘둘 감고 이리저리 뒤척거리며 '불과 얼마 전까지는 분명 더워서 잠이 안 왔었는데 도대체 날씨는 왜 이리 간사한가'에 대한 끝도 없고 답도 없는 물음으로 지새다가 멍해진 머리로 일어나곤 했다. 아 안 되겠어. 오늘은 정말 이불을 바꿔야지. 그러나 핸드폰으로 날씨를 검색해보면 아직도 한낮의 기온은 28, 9도에 육박하는 후끈한 날씨다. 실제로 간만에 입맛이 동해 사다 놓은 초콜릿 과자는 어제 오후쯤 하나 먹으려고 뜯어보니 표면이 아주 녹진녹진하게 녹아 포장지에 다 들러붙어 있었다. 아직도 날씨가 이런데, 섬뻑 가을에 덮는 차렵이불을 꺼내도 될 것인가. 이 지점에서 나는 결국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며칠만 두고 보자는 식으로 예봉을 피해 갔다. 그리고 그 결과가 다섯 시 무렵 쌀쌀해진 새벽 공기에 잠에서 깨어 이불을 둘둘 말고 새우처럼 웅크린 채 '도대체 날씨가 왜 이모양이냐'를 투덜거리는 요 며칠 새의 아침이었다.


요즘은 무슨 날씨가 중간이 없어, 그치. 불쑥 따뜻한 인스턴트커피가 먹고 싶어져서 한 잔 타서 홀짝홀짝 마시며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일교 차가 이렇게까지 나버리면 난 도대체 어디에 맞춰서 살아야 되는 거야. 한낮에는 조금 더운 듯하고 새벽엔 춥고. 이불을 두 채 꺼내놓고 날씨 봐가면서 덮을 수도 없고. 이건 도대체가... 끝도 없이 궁시렁대다가 이쯤에서 나는 멍청한 목소리로 아 하고 돌 터지는 소리를 냈다. 이불은 어차피 밤에 덮는 거지 낮에 덮는 게 아니구나. 낮 온도가 몇 도든 밤에 추우면 꺼내는 게 맞는 거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고 보니 요 며칠간 부린 내 미련이 웃기기도 하고 딱하기도 해서 나는 한참을 웃었다. 핸드폰으로 검색해 본 요 며칠간의 최저기온은 내내 18, 19도에 머물고 있다. 내가 일어나는 여섯 시쯤에는 15도까지도 내려간다. 그러니까 나는 어차피 그 시간쯤에 쓸 물건을, 한낮의 온도를 기준으로 재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역시 사람은 못 먹어도 배워야 돼. 머리가 멍청하면 손발이 고생한다니까. 그치. 대답 없는 그의 사진 액자를 향해 그렇게 덧붙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오늘 아침에 침대를 정리하면서, 나는 두어 달 간 덮었던 여름 이불을 세탁기에 던져 넣고 가을에 쓰는 얇은 차렵이불을 꺼냈다. 이제 새벽에 차다가 추워서 잠이 깨는 일은 당분간 없겠지. 보드라운 이불이 깔린 침대는 보기만 해도 푹신해 보여서 기분이 좋아졌다. 며칠간 부린 내 미련의 끝이 이런 식으로 너무 허망한 것은 좀 머쓱한 일이지만 본래 모든 것은 그렇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느닷없이 끝나고 느닷없이 시작되게 마련이 아니던가 하고 생각해 본다. 그가 사라져 버린 내 인생이 50도 먹지 않은 40대 중반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줄 아무도 몰랐던 것처럼.


언젠가, 당신을 기억하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지금의 이 미련도 이런 식으로, 어느 날 문득 빨아서 집어넣는 여름 홑이불처럼 놓아버리는 날이 올까. 뭐, 모르는 일이다. 별로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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