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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Sep 11. 2022

그러게 있을 때 잘하라니까

-152

그와 나는 빵을 좋아했다. 업력이 수십 년 된 유명한 빵집에 찾아가 그 집의 이름난 빵들을 사다 먹는 것은 그와 나의 사는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그렇게 사다 먹어보는 빵들은 대부분 다 그렇게나 유명할만한 이유가 있었고 우리는 그 빵들을 먹는 내내 그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웠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고 그의 건강 문제로 운전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우리의 즐거움은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 택배가 되는 빵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물론 우리가 가던 빵집들은 대부분 밀려드는 손님만을 감당하기도 어려워 굳이 택배 같은 건 하지 않았고, 그나마 하는 집들도 야채빵 등 상하기 쉬운 빵들은 배송을 하지 않는다던가 하절기에는 택배를 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식의 자잘한 조건들이 붙어 있어서 편하게 집에 앉아 손가락 몇 번을 놀려 받아볼 수 있는 빵들은 생각보다 그리 종류가 많지 않았다.


대충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떡'을 사다 먹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떡보다 빵을 좋아했던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보관성의 문제도 있었다. 오븐에 집어넣고 몇 분 돌리거나, 가끔은 그냥 상온에 몇 시간 꺼내놓으면 알아서 해동되는 빵과는 달리 떡은 찌는 과정을 거쳐야 했고 그 점이 조금은 번거롭고 귀찮았던 탓이었다. 떡을 찌는 것에는 만두를 찌는 것이나 감자를 찌는 것과는 또 다른 약간의 스킬이 필요한 건지 그렇게 새로 찐 떡은 물러지거나 속이 터지거나 여튼 어딘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런 기억이 있었던 바, 그래도 추석엔 송편이지 하고 호기롭게 송편을 사다 놓고 과연 저 송편을 얼마나 맛있게 쪄서 먹을 수 있을까 내심 반신반의하던 참이었다.


어제는 추석이었다. 봉안당에 가서 그에게 추석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오후에 송편을 쪘다. 마트에서 산 냉동송편은 이걸 밖에 꺼내놨다 쩌야 하는지 아닌지부터가 애매해서 한참을 인터넷을 뒤져야 했다. 무엇이든 검색하면 답이 나오는 인터넷에서는 냉동송편을 터지지 않고, 쫀득하고 맛있게 짜는 법에 대한 여러 사람의 팁이 넘쳐나고 있었다. 냉동송편은 해동을 해서 찌면 안 된다고 한다. 물이 끓으면 찜기에 냉동송편을 서로 붙지 않게 얹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렇게 찐 송편을 찬물에 씻어서 선풍기 같은 걸로 약간 식히라는 대목에 와서 나는 잠깐 혼란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기껏 놓고, 그걸 찬물에 씻으라고? 그러나 어떠다 한 번 나오는 글이 그런 거라면 그 사람이 유별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주부 9단쯤 돼 보이는 분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는 거라니 그래 보지 뭐.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일단 냄비에 물부터 끓였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찜기에 면포를 깔고 송편을 올렸다. 10분 정도만 찌면 된다는 것을, 혹시나 싶은 마음에 15분 정도를 쪘다. 그리고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반신반의하며 찐 송편을 찜기 채로 들어다 찬물로 헹궜다. 그리고 선풍기 바람 앞에서 식혔다. 그렇게 한참을 식히고 참기름까지 처덕처덕 발랐다. 그렇게 쪄낸 송편은, 아닌 게 아니라 제법 괜찮았다. 떡은 국수나 라면이 아니어서 찬물에 잠깐 헹군다고 속까지 단박에 차가워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나는 꽤 만족스러운 추석 송편을 먹을 수 있었다.


먹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그가 있을 때도 이렇게 좀 해서 줘볼걸. 떡을 사는 것, 사서 냉동실에 잘 집어넣는 것, 무슨 떡을 언제 먹을 건지를 고민하는 것, 그날 먹을 떡을 미리 꺼내 놓는 것, 찌는 것, 접시에 담는 것, 찍어먹을 조청을 따르는 것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그가 알아서 하는 동안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며 '맛있겠다'만 연발하는 철딱서니 없는 짓은 좀 안 해도 되었을 텐데. 그가 떠나고 난 뒤에야 맛있게 잘 쪄진 송편에 참기름까지 발라 그의 책상에 올려놓으며 나는 어쩔 수 없이 눈앞이 시큰해졌다.


그러게 있을 때 잘해야 한다. 그 사실 하나만을 연일 깨닫는 올해 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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