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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끼 겨우 먹는 나의 식단은 대개 이틀 주기로 돌아간다. 밥을 한 날은 찌개든 국이든 끓여서 먹고, 다음날은 어제 남은 식은 밥으로 해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음식(볶음밥이라든지 하는)을 해서 먹거나 라면을 끓여서 말아먹거나 한다. 라면을 먹는 날은 주로 오전에 외출했다가 점심시간 무렵 집에 돌아오는 날이다. 상담을 받으러 가는 날이라거나 그를 보러 봉안당에 가는 날 같은 날들이다.
라면을 끓여먹는 건 그 조리 과정의 간단함을 차치하고라도 결과물의 퀄리티가 일정하고 예측이 가능하다는 매우 큰 장점이 있다. 물론 라면도 라면 나름이라 뭘 넣고 어떻게 끓이는가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나온다는 사실은 그가 이미 증명한 바가 있지만 나는 나 혼자 먹을 라면에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이지 않으므로 그런 예외는 일단 제쳐두고 생각해 보자면, 내가 라면을 끓이면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계란과 파라도 넣느냐 그나마도 넣지 않느냐 정도의 차이밖에는 없다. 그리고 그 차이는 미슐랭 식으로 말하자면 별 한 개를 넣느냐 빼느냐 하는 차이 정도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물의 양이 많으냐 적으냐 쪽이 결과물에 미치는 차이는 더 클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분은 요즘은 계량컵을 사용하므로 역시 변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일주일에 일곱 번 라면을 끓여먹고 살 수는 없으므로, 나는 대개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 정도는 뭔가를 조리하는 과정에 직면해야 한다.
아직도 일과 시간 중에는 늘 켜 두는 그의 데스크탑 컴퓨터에는 그가 참고하던 레시피들이 따로 정리된 즐겨찾기가 있다. 그 속에서 나는 그가 내게 해주었던 그 많은 신기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만날 수 있다. 요즘의 레시피들은 매우 꼼꼼하고 자세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으므로 마음만 먹는다면 따라서 만들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차마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어차피 나 혼자 먹을 밥에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그에 못지않게 큰 숨은 이유는 '그래 봤자 그가 해주던 것 같은 맛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나는 둘 다 소위 '맵찔이'였다. 그는 원래부터도 매운 걸 잘 못 먹는 편이었고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의 손에 밥을 얻어먹으면서 덩달아 매운 음식에 대한 내성이 떨어졌다. 그래서 그는 레시피를 보면서 고춧가루의 양을 대개 반 정도로 줄여서 넣었다. 그렇게까지 해도 가끔은 우리가 먹기엔 매웠다. 이것도 넣으라는 고춧가루 내가 반으로 줄인 거야. 이 레시피 올린 사람한테 일곱 살 먹은 딸이 있는데, 걔도 맛있다고 잘 먹을 정도라는데 우리는 그 반도 안 매운 걸 먹고 이러고 있는 거라고. 그게 탄탄면이었던지 떡볶이였던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매워서 인중에 배어오르는 땀을 닦으려고 연신 물티슈를 찾으면서 그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아, 그러니까 우리는 남의 집 일곱 살짜리 애기만큼도 매운 걸 못 먹는다는 얘기구나. 인생 헛살았다 진짜. 그렇게 말하며 우리는 밥을 먹다 한참을 웃었었다. 그날 이후 '남의 집 일곱 살짜리 애기'라는 말은 그와 나의 매운 것 못 먹는 성향을 가리키는 일종의 은어가 되었고 가끔 바깥에서 밥을 사 먹을 때조차도 음식이 예상외로 매우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말을 꺼내놓고 소리를 죽여 킥킥거리며 웃곤 했었다.
어제는 간만에 된장찌개를 끓였다. 된장도 실컷 퍼다 넣고 고추장도 퍼다 넣고 고춧가루도 듬뿍 뿌렸다. 그렇게 끓인 된장찌개는 그가 끓여주던 것보다 턱없이 맵고 짰다. 그러나 이젠 그렇게까지 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게 난 원래는 그렇게까지 맵찔이가 아니었으니까, 그의 곁에서 잠시 맵찔이 행세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져서 본성을 드러내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게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었으니 그 레시피 주인의 딸, 그러니까 원조 '남의 집 일곱 살짜리 애기'는 지금쯤 어엿한 10대 소녀가 되었을 텐데. '우리 집 일곱 살짜리 애기'는 거기 가서 도대체 뭘 먹고 지내는지 모르겠다. 거기서도 매운 건 못 먹어서 고춧가루를 반으로 줄이고 있으려는지. 아마 그러고 있을 것 같다. 사람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