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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Sep 16. 2022

고추기름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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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안에 김치가 조금 남아있어서 김치볶음밥을 해 먹기로 했다. 볶음밥은 원래도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이렇게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매 끼니를 셀프로 챙겨 먹어야 하게 되고 나니 그지없이 고마운 음식 중의 하나다. 그야말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대충 썰어서 휙휙 볶아버리면 얼추 내가 아는 그 맛이 나오기 때문이다. 카레가루를 조금 뿌린다거나 김치를 썰어 넣는다거나 하는 약간의 잔재주로 꽤 다양한 맛이 나기도 하고.


김치를 꺼내려고 냉장고 깊은 곳으로 손을 뻗다가, 나는 그가 끓여놓았던 고추기름이 몽글몽글하게 변질돼 산패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트에 가서 몇천 원 남짓이면 편하게 살 수 있는 고추기름을 그는 직접 끓여서 만들었다. 식용유에 고춧가루를 볶아서, 안 쓰는 커피 드리퍼에 종이필터를 끼우고 한참이나 거르면 향은 좋고 맵지는 않으면서도 정말 보석 같은 예쁜 색깔의 고추기름이 한 병 정도 나온다. 그는 그렇게 끓인 고추기름을 여기저기 참 알차게 썼다. 이 고추기름은 그가 끓여놓은 마지막 고추기름인 셈이었다. 물론 한 끼 밥을 해 먹는 데도 갖은 삽질을 다하는 나로서는 뭔가를 하면서 고추기름 씩이나 쓸 일이 없었고, 제때 사용해 줄 사람을 잃어버린 고추기름은 그가 떠난 후 다섯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냉장고 안에 방치된 채 조금씩 산패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집 냉장고는 내겐 하나의 거대한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생각지도 못한 것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 대부분은 그가 채워 넣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대부분 두 사람이 먹을 것 기준으로 사다 놓은 것들이어서 양이 많고, 나로서는 이걸로 도대체 뭘 하려고 했던 건지 짐작도 가지 않는 식재료들이다. 이미 유통기한이 한참이나 지난 그것들을 붙잡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또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이별이 그의 뜻이 아니었음을, 그 또한 나와 오래오래 함께 있고 싶었을 거라는 사실만을 강변해 주기 때문이다. 이 아무도 바란 적 없는 이별은 도대체 누구의 탓인가. 그런 지점까지 생각이 내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귀결인지도 모른다.


이 고추기름을 어찌할 것인지 잠깐 고민하다가, 제법 단호하게 나는 그 상해버린 고추기름을 그냥 버렸다. 오빠가 신경 써서 끓여놓은 것 버려서 미안해. 근데 난 저런 거 쓸 줄도 모르고, 상해 가는 걸 먹을 거 놔두는 냉장고 안에 같이 넣어두면 안 되잖아. 그런 말을 면피 비슷하게 한 마디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기름을 담았던 유리병은 미끌거리지 않도록 박박 씻어 제 자리에 갖다 놓았다. 그 병은 원래 파스타 소스를 담던 것으로 그가 고추기름을 끓여서 담아놓을 때 애용하던 것이었다. 내가 저기다가 또 뭔가를 담을 일이 생기긴 할까 의문스러웠지만 그 병까지는 차마 버리지 못했다.


그게 어제 점심때의 일이었으니 거의 만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나는 상한 기름을 내다 버릴 때의 그 단호함은 어디다 팔아먹고 지금까지도 그 기름을 버린 것을 내심 후회하고 있다. 버리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조금 더 놔둘 걸 그랬나 하고. 몇 년 전 인터넷에서 봤던 어떤 글이 생각난다. 냉장고 속에서 엄마가 보내준 김치가 썩어가고 있다는 글이었다. 전형적인, 엄마가 싸서 보내는 반찬을 귀찮아하는 객지에서 혼자 사는 자식이 쓴 것 같은 그 글의 반전은 마지막 한 줄, '어쩌겠어 우리 엄마 김치는 그게 마지막인데'였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후회하고 있다. 그리고 며칠 더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 고추기름을 그렇게 쉽게 냉큼 버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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