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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Sep 18. 2022

이제 와서 더워 봤자

-159

이상하다. 왜 이렇게 덥지. 그런 말을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흠칫 놀란 것이 벌써 며칠 째다. 잠깐 하는 외출 때는 한동안 마스크 속으로 차지 않던 땀이 차올라 코 언저리가 축축해지고 밥을 한다든가 청소를 한다든가 하는 일 때문에 약간이나마 움직이고 난 뒤에는 저도 모르게 아직 싸 넣지 않은 선풍기를 켜고 있다. 지금이 9월이고, 내가 얼마 전 내 손으로 얇은 여름 이불을 빨아서 이불장 속으로 싸 넣어 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 없었다면 한 번쯤은 에어컨을 켰을지도 모른다. 급기야 어제 오후쯤엔 도대체 날씨가 왜 이렇게 후덥지근하냐는 짜증을 내며 들여다본 핸드폰의 날씨에 수은주가 30도라고 찍혀 있었다. 원체 세상과 담을 쌓고 살고 있는 터라 몰랐지만 때아닌 폭염주의보가 내린 지역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야 알았다. 미쳤다 미쳤어. 이러니 덥지. 


그러나 이 때늦은 더위에 투덜거리면서도 문득 생각하는 것은, 그래도 이 더위는 한두 달 전의 그 더위와는 이미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온도의 1, 2도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다. 여름에는 밤까지도 내내 더웠지만 지금은 그래도 낮에 잠깐 덥고 만다는 지속성의 차이도 아니다. 뭐랄까 요 며칠간의 더위는 기세가 예전 같지 않다. 날씨는 덥지만 공기 자체가 이미 식어버린 탓인지 한참 더울 때의 그 숨 막히는 느낌은 없다. 어려서 그렇게 무섭던 아버지의 회초리가 어느 날 문득 별로 아프지 않아서, 아 이제 아버지도 늙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그런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생각보다 빨리 기세가 꺾였고, 그래서 이대로 곱게 물러날 수는 없다는 최후의 발악처럼 느껴질 뿐 7월 초의 그 숨이 턱 막히는 막막함은 없다. 땀이 좀 나더라도 잠깐 선풍기를 틀어 땀을 식히고 시원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쉬면 또 언제 더웠었냐는 듯 항상성을 회복하는 내 몸상태를 봐서도 그런 것 같다. 날씨가 아무래도 미친 것 같다는 요즘 내 투덜거림은 이미 맛을 봐버린 그 청량하고 서늘한 날씨에 대한 아쉬움일 뿐, 더워서 못살겠다는 아우성은 이미 아니니까.


거긴 별일 없냐. 늘 하던 대로 침대를 정리하고 청소를 하고, 글 한 타래를 쓰러 자리에 앉았다가 문득 그의 사진을 향해 묻는다. 이불은 안 걷어차고 잘 덮고 자는지. 자다가 목말라서 깨진 않는지. 그리고 당신도 나처럼, 문득 자다 깬 새벽 텅 비어버린 침대 옆자리를 보고 순식간에 스산해지진 않는지. 당신이야 마음만 먹으면 나를 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도 못한데, 이제 웬만하면 꿈에라도 좀 들러서 안부 인사라도 좀 해주면 안 되는 건지, 뭐 그런 말들을.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이 거대한 자연의 섭리조차도 제 시간이 끝나는 것이 아쉬워 이렇게 떼를 쓰는데, 나 같은 미욱한 인간이야 말할 필요가 뭐가 있겠느냐고. 그를 떠나보내고, 그가 있던 시간 속에 머물러 있고 싶어 하는 지금의 내 마음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언젠가 때가 되면, 나도 내 손으로 순순히 그를 놓아 보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너무 억지로 떠밀지 않아도. 이제 와서 더워 봤자 얼마 안 가 끝날 이 때늦은 더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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