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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Sep 20. 2022

'나' 키우기

-161

그가 떠나고 난 후 거의 매일매일 절감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뭐가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것이다. 청소도 그렇고 밥해 먹는 것도 그렇고 그 외의 기타 등등의 모든 일들이 그렇다. 치우려고 들면 집안의 모든 것이 치울 거리고 생각하자고 들면 역시나 집안의 모든 것들이 다 골치 아플 건수들이다. 가스레인지 후드도 한 번 닦아야 하고 한동안 치우지 못한 창틀이나 유리창도 한 번 닦아야 하고 또 슬슬 물때가 끼기 시작하는 욕실도 한 번 청소해야 한다. 에어컨이야 코드를 뽑고 필터를 한 번 청소한 후 커버를 씌워버리면 된다지만 선풍기도 이젠 슬슬 커버를 씌워 안 보이는 곳에 치워놓아야 한다. 선풍기가 들어간다는 말은 이제 조만간 가습기를 꺼내야 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자면 내가 이럴 때 골치 아프지 않으려고 얼마 전에 나름 침구와 쿠션 커버들을 다 갈아치우는 결단을 내렸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가 있을 때는 이 모든 일들은 다 그의 소관이었고 나는 아주 쉽고 편하게 그가 세워놓은 일정에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오늘 뭔가를 치우는 날이구나 싶으면 옆에서 조금 거들면 됐고 오늘 뭔가를 바꾸는 날이구나 싶으면 옆에서 그가 지시하는 일들을 몇 가지 깔짝대며 하기만 하면 됐다. 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바뀌는 이 미묘한 시기에, 하필 어느 날을 잡아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그 디테일한 작업을 나는 그에게 통째로 떠밀어놓고 이날 이때껏 한 번도 스스로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밥 한 끼를 해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설픈 볶음밥 한 끼를 해 먹으려고 해도 조금만 딴생각을 하다 보면 여지없이 스텝이 꼬인다. 팬에 썰어놓은 야채를 다 때려 넣고 볶기 시작하고 나서야 미처 칼과 도마를 치우지 않은 것을 알아챈다든가 밥까지 다 넣은 후에야 미처 계란을 풀어놓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든가 하는 식이다. 물론 큰 문제는 아니고, 아주 작고 사소한 문제들일뿐이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실수를 몇 번만 하고 나면 거창한 음식도 아니고 겨우 볶음밥 한 그릇을 해 먹은 주제에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 거리를 마주치게 되거나 불에 올려놓은 프라이팬에서 뭔가가 타닥타닥 눌어붙는 소리에 쫓겨 비명을 지르며 계란을 풀고 미처 꺼내놓지 못한 뭔가를 꺼내오는 번거로운 과정들을 거치게 된다. 둘이서 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이런 일들이, 이젠 충분히 생각하고 차근차근 하지 않으면 반드시 중간에 뭔가 실수가 생기는, 일종의 '과업'으로 변해 있다.


그래서 매일매일, 나 하나를 거둬먹이기 위해 온갖 귀찮은 일들을 하며 나는 연신 투덜거린다. 아, 진짜 나 새끼 하나 키우기 힘들어서 못해먹겠네. 오빠는 이러고 27년을 어떻게 살았냐. 물론 대답은 없다. 그러나 나는 그가 뭐라고 대답할지를 이미 안다. 그는 그냥 말없이 웃었을 것이다. 그건 보기에 따라서는 그까짓 게 뭐가 힘드냐는 말이기도 하고 겨우 고거 몇 달 해놓고 뭐가 그렇게 힘들어 죽고 있냐는 핀잔이기도 할 것이며 그러게 27년을 나 혼자 다 했으니 이제부터는 네가 좀 해보라는 짓궂음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이만하면 꽤 힘내고 있다고 스스로 자평하는 중이다. 물론 그가 하던 것의 반의 반은 겨우 되나 싶은 수준이긴 하지만.


생각건대 좀 더 편하게, 덜 귀찮게 하루하루 사는 방법도 없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살다 보면 언젠가, 조금씩 그렇게 변해갈지도 모를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그가 하던 대로, 최대한 그가 내게 가르쳐놓은 대로 이것저것 동동거리며 살아보려고 한다. 그가 나를 키우던 방식대로. 그게 그라는 사람이 내 곁에 살았었음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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