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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근처에는 줄잡아 가로로 두 블록 세로로 두 블록 정도 안에 편의점이 다섯 군데나 있다. 그 편의점들은 각각 다 브랜드가 다르고, 그래서 행사를 하는 물건과 내역이 조금씩 다르다. A 편의점에는 2+1 행사를 하는 커피를 B 편의점에서는 1+1에 팔고, 대신 B 편의점에서는 정상가를 받는 아이스크림을 A 편의점에서는 1+1에 판다든가 하는 식이다. 그 외에도 도시락은 어디가 맛있고 간식거리로 먹을 만한 빵 종류는 어디가 괜찮으며 갑작스레 마요네즈나 핫케이크 가루 등이 필요할 때는 어디에 가면 그래도 몇백 원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둥의, 일종의 편의점 쇼핑 가이드가 우리에게는 존재했다. 물론 그건 그가 내 곁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고, 지금은 그런 것 따위 많이 의미가 퇴색하긴 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 한동안 가다가, 어제는 조금 지겨워져서 한 블록 정도 떨어진 다른 편의점에 가보기로 했다. 늘 다녀서 매대의 위치와 진열된 상품의 순서를 대충이나마 외울 수 있는 곳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기분 전환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주만에야 가는 듯한 그 편의점의 매대에서, 나는 올해의 첫 호빵을 발견했다. 얼마 전 군대를 제대한 한 서글서글한 인상의 배우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사이드에 커다랗게 박힌, '꿀고구마 호빵'이었다. 섬뻑 그 호빵을 살 것도 아니면서 나는 한참이나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도 어렸고 나도 어렸던-이런 시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당사자들은 결코 자신들이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시절에, 우리는 떨려나지 않고 발 붙이고 사는 것만도 장한 서울이라는 동네에서 감히 창업이라는 걸 했었다. 그리고 그 끝은 참담한 실패였다. 그 몇 년간의 삽질은 그 후로 우리의 삶에 장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그러니 그 당시의 고생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하루였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나는, 길가 편의점 입구에 놓아둔 호빵 찜통을 보고는 아, 호빵 먹고 싶다 하는 철딱서니 없는 소리를 하며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렸다. 당시에 우리는 버스비 천 원 남짓을 아끼려고 집까지 걸어가는 중이었고 당연히 호빵 따위를 사 먹을 만한 여유는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짐짓 내 철없는 소리를 못 들은 체하고 빨리 집에나 가자며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아니, 정확히는 끌었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에피소드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건 그냥 그와 내가 함께 보낸 9834일의 수많은 그렇고 그런 날들 중 하나로 내게서 아주 쉽게 잊혀졌다. 그러나 그는 기억했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찬바람이 나기 시작하고 편의점과 마트의 매대에 호빵이 진열되기 시작하면 불문곡직하고 무조건 한 봉지씩을 샀었다. 내가 그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아느냐는 말을 하면서. 그러니 어제도 그가 있었더라면 그는 분명 그 호빵을 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 곁에 없고, 나는 그 호빵을 사지 않고 돌아왔다.
호빵은 다른 여타의 간식들과는 조금 달라서, 사다가 냉장고에 던져놓고 마음 내킬 때 편하게 꺼내먹으면 되는 음식이 아니다. 호빵을 조금 더 호빵답게 먹기 위해서는 찜기에 면포를 깔고 10여 분간 찌는 수고를 해야 한다. 게다가 의외로 호빵은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도 않아서 오래오래 두고 먹을 수도 없다. 길어봐야 일주일 안에 다 먹어치워야만 한다. 그런 번거로운 것을, 내가 과연 나 하나만을 위해 사다 놓고 먹을 수 있을까. 내게 그런 기력이 남아 있을까.
당신은 왜 이다지도 내 길지 않은 인생의 온갖 모서리에 묻어있어서 이런 식으로 나를 눈물짓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