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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Oct 03. 2022

노란 꽃은 언제나 옳다

-174

스물네 번째 꽃을 사다가 그의 책상에 꽂았다. 스물네 번째로 선택된 꽃은 다른 많은 꽃들이 그러했듯 이름만은 어딘가에서 들어보았으나 실제 꽃과 이름은 이번에 처음으로 매칭된 메리골드라는 꽃이다. 이 꽃은 보기에 따라서는 송이가 작은 수국 같기도 하고 지나치게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아주 커다란 민들레의 홀씨 같기도 하고 아주 얇은 종이를 여러 번 접어서 만든 부채나 스탠드 갓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껏해야 꽃병 하나 정도에 꽂아놓을 만큼의 꽃이 있고 없고에 따라 집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지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그 비현실적인 색깔에 있지 않나 하고 가끔 생각한다. 꽃의 색은 사람이 내는 색깔과는 분명 어딘가가 다르다. 설령 비슷해 보이더라도 사람이 내는 색깔에는 나지 않던 감탄이 꽃의 색깔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터져 나오는 걸 보면 시각 단계가 아닌 뇌의 단계쯤에서 인지할 수 있는 특별함이 있는 모양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중에도 노란색의 꽃들은 내겐 조금 더 각별한 느낌이 있다.


본래 나는 노란색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도 그랬다. 뭐 이유는 많았다. 애매하게 때를 잘 타서. 너무 환한 게 부담스러워서. 얼굴에 잘 받지 않는 색이어서. 왠지 유치해 보여서 등등. 그래서 옷장 가득 차 있는 그와 나의 옷들 중에는 노란색 옷이 한 벌도 없다. 옷뿐만이 아니다. 집안에 쓰는 물건 중에도 노란색 물건은 없다. 침구도, 쿠션도, 커피를 마실 때 쓰는 머그컵에도 노란색은 없다. 우리 집에 있는 노란색이라고는 이걸 어디서 받아왔는지 기억도 안 나는 수건 몇 장뿐이다.


그리고 나는 지난 4월, 그의 책상에 처음으로 꽃이라는 걸 사다가 꽂아놓았다. 노란색 프리지아였다.


그 프리지아는 일주일을 조금 넘게 갔다. 지금도 꽃 관리를 아주 잘한다고는 입에 발린 말로라도 말할 수 없지만 그때의 나는 꽃대를 평평하게가 아닌 사선으로 잘라 꽃병에 꽂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장할 정도의 문외한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일주일을 넘겨 버텨준 걸 보면 그때 그 프리지아는 아마 시름에 잠겨 있는 나를 위해 제가 가진 것 이상의 생명력을 짜내 분투해준 것이 틀림없다. 우리 집 어디에도 없는 그 영롱한 노란색의 올망졸망한 꽃들은 어느 날 갑자기 심장의 절반이 뜯겨나간 채 빈사의 상태에 빠져 있던 나에게 너무나 큰 마음의 위로였다. 그때 그렇게나 큰 위안을 그 한 줌도 안 되는 식물에게서 얻지 못했다면 나는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주 한 번씩 각각 다른 꽃을 사다가 그의 책상에 꽂아놓는 짓 따위는 더 이상 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곁을 스쳐간 그 많은 꽃들을 통해서 스러져가는 그 순간까지도 아름다운 생명을 봤고 그들에게서 많은 위로를 얻고 있다. 그건 아마도, 내 눈엔 보이지 않으나마 자신의 자리에 앉아 그 꽃을 보고 있을 그 또한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시작이 그래서인지 노란색의 꽃들은 내겐 조금 더 각별하다. 그리고 이런 걸 두고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노란색이 나는 꽃들은 유독 향기가 짙다. 그 프리지아도 그랬고, 중간에 사다 놓았단 엷은 크림색의 소국도 그랬고, 이번에 사 온 메리골드도 그렇다. 뭔가를 찾으러, 혹은 뭔가를 갖다 두러 그의 책상 근처에 갈 때마다 나는 그 근처를 휘감은 향기에 저도 모르게 발을 멈추게 된다. 향 참 좋다 그지. 노란 꽃들이 유독 향이 좋은 것 같아. 그런 말을 하면서.


스물네 번째 꽃을 사다가 그의 책상에 꽂았다. 유독 향기가 좋은 이 노란 꽃의 이름은 메리골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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