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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Oct 05. 2022

마음의 거리

-176

오늘은 그가 떠나간 지 180일이 되는 날이다.


진짜 독하다. 어떻게 꿈에조차 한 번 안 오냐고, 오늘도 늘 하던 지청구를 늘어놓던 중이었다. 우리가 지금껏 여섯 달이나 얼굴 한 번 못 보고 전화 통화 한 번 안 하고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있었냐. 생전 처음인데 어쩜 이렇게 쓰다 달다 말도 없이 사람을 생까느냐 운운하는 말을 하다가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 우리가 이렇게나 오래 얼굴 못 보고 있어 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구나 하고. 그는 나보다 세 살이 많다. 그래서 같이 다니던 학교도 나보다 먼저 졸업해 취업을 해서 서울로 올라왔고 나는 남은 학업을 마치기 위해 부산에 남아있었다. 그렇게 소위 '롱디'를 한 기간이 2년쯤 있었다. 그때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KTX는 2000년도 초반쯤에야 생겼다. 그 말은 우리가 그렇게 떨어져 있던 시절에는 KTX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당시에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방법은 비행기라도 타지 않는 이상(물론 이것도 외진 곳에 있는 공항까지 나가는 시간을 포함하면 토털 시간은 비슷하게 걸릴 것 같기는 하다) 최소한 다섯 시간 정도를 들여서 고속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부산에서 서울을 가는 거든 반대로 서울에서 부산을 오는 거든 만만하게 보고 덤빌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우리는 몇 번 얼굴을 마주하지는 못했다. 그랬던 시절도 있긴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땐 이렇게까지 외로웠던 것 같지는 않다. 당시 우리는 연애 3년 차 정도에 접어들던 시기였고, 그 무렵 생겨나게 마련인 적당한 매너리즘 때문인지 오히려 약간의 해방감 비슷한 것마저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그와 사귀는 사이가 되었고 그의 관리 감독하에 꽤 빡센 1, 2학년을 보냈다. 그래서 그가 서울로 떠난 순간 나는 순식간에 느슨해져 버렸다. 스펙 관리에 목숨을 거는 지금의 대학생들이 들으면 기겁을 할 이야기지만 4학년 2학기 땐가는 거의 수업을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시험만 치고 레포트만 내는 식으로 배를 째다가 기어이 학사경고를 맞아 겨울방학 계절학기로 간신히 모자란 학점을 때우고 졸업을 했었다. 물론 이 사실을 그는 끝까지 몰랐지만.


그땐 이것의 네 배나 되는 시간도 혼자 잘 놀면서 버텼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하루하루가 힘들까. 왜긴. 그때는 기차로 다섯 시간만 들이면 그를 보러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좀 다르니까.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에 그가 가 있으니까. 갈 수 있지만 안 가는 것과 갈 수 없어서 못 가는 것은 사실 그만큼이나 다른 이야기니까. 나 혼자서 느끼는 마음의 거리라고나 해야 할까.


요즘 아침저녁으로 날이 쌀쌀해져서 그런지 부쩍 이런 청승맞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게, 꿈에라도 좀 와서 미처 못한 이야기라도 좀 나누고 붙들고 실컷 울기라도 하면 좀 덜 할 게 아니냐고, 글을 다 써 가는 말미에 나는 다시 투덜거리게 된다. 서울 부산 이야기가 아니지 않냐고. 내가 가는 것보다는 당신이 다녀가는 게 조금 더 싸게 먹히지 않겠느냐고.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비싸게 굴 거냐고.


나 요즘 당신이 너무너무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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