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다시 접을 자신이 없어서

-18

by 문득

2017년 초겨울 무렵 그와 나는 도배를 새로 하는 문제에 꽂혀 있었다. 며칠간의 토론 끝에 우리는 벽지를 다시 바르는 대신 벽과 문에 페인트칠을 새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 와중에 같이 손 본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욕실 문손잡이를 교체하는 것이었다. 욕실 문손잡이에 습기가 차 녹이 슬어서 한 번에 문이 열리지 않아 몇 번씩 덜그럭거려야 겨우 열리는 일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었다. 혼자 사는 사람 중에는 샤워하러 들어갔다가 욕실에 갇혀서 119 부르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그래서 혼자 사는 사람은 욕실에 119 신고용 유심칩 없는 핸드폰 한 대를 갖다 놔야 한다는 말도 있다는 얘기를 하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제 그 이야기는 내게는 더 이상 농담이 아니게 되었다.


그때 바꾼 욕실 문손잡이는 요즘 다시금 뻑뻑하다. 그래서 나는 혹시나 이 문이 안 열리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응급처치 비슷하게 녹 제거제를 잔뜩 뿌려놓긴 했지만 이게 얼마 가지 못한다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안다. 아마 언젠가 나는 인터넷과 유튜브를 뒤져가며 욕실 문 손잡이를 나 혼자 갈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키가 큰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까치발 정도를 하고 어렵지 않게 꺼내던 물건을 꺼내기 위해 나는 식탁 의자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올라서야 한다. 그가 떠난 후 아직은 형광등을 갈 일은 없었지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게는 아마 그가 쓰던 것보다 조금 더 높은 발판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6월 무렵, 에어컨을 틀기엔 뭔가 때가 이른 것 같고 그래도 이불이 짜증스러울 만큼 더운 초여름 밤이 와도 나는 이제 더 이상 창문을 열어놓고 잘 수 없을 것이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밖에서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면 놀란 고양이처럼 하던 일을 멈추고 긴장하게 될 것이다. 술에 취해 집을 착각한 옆집 사람이 도어록 비밀번호라도 눌러대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아마 패닉에 빠지겠지. 지금껏 내 인생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일들이 이제부터는 일어나게 될 것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 참치마요 덮밥을 해 먹으려다가, 나는 두 알 남아있었던 양파가 다 상해있는 것을 발견했다. 근 2주 이상을 손대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양파를 한 망 사 오려고 집 앞 슈퍼마켓에 갔다. 가는 김에 떨어진 물건이 두세 가지 있어 그것들도 사 와야 했다. 맨손에 들고 오기에는 가짓수가 조금 되어 장바구니를 가져가야 할 것 같았다.


우리 집엔 몇 가지 종류의 장바구니가 있다. 지금처럼 양이 많지 않은 몇 가지만 사 올 때 쓰는 천으로 된 장바구니도 있고 사 올 것이 많을 때 쓰는 타포린 재질의 큰 장바구니도 있다. 그날 내가 사 와야 할 물건의 양들로 봐서는 천 장바구니를 가져가는 게 맞았다. 그러나 그 장바구니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장바구니를 쓰고 난 후, 다시 예쁘게 말아서 접어놓는 방법을 나는 모른다는 거였다. 그건 늘 그가 하는 일이었다. 내가 몇 번인가 그를 흉내 내어 어설프게 접어 놓으면, 그는 그 장바구니를 웃으면서 다시 풀어서 접으며 사람 두 번 일 시키지 말고 그냥 놔두라고 했었다. 이런 건 내가 너보단 잘한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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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는 그냥 아무렇게나 접어놓으면 되는 커다란 타포린 장바구니를 들고 슈퍼에 갔다. 나는 그가 접어놓은 장바구니를 펴서 쓸 수도, 다시 그 모양 그대로 접어놓을 자신도 없었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꽤나 오랫동안 저 장바구니를 펴서 뭔가를 담을 엄두를 내지 못할 것 같다.


이렇게 내 삶 곳곳에 스며있는 사람을 나는 도대체 어떻게 떠나보낼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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