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샀다. 아주 오래전부터 읽고는 싶었으나 그 볼륨에 지레 기가 죽어 감히 범접도 못하던 책이었다. 그러던 책을 다시 읽을 용기를 내게 된 건 뭐든 명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람이 백 세까지 사느니 마느니 하는 이 시대에 그 절반도 채 못 살고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떠나버린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일이 왜 그에게, 나에게 일어나야 하는 건지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700 페이지가 넘는 책의 두께를 보니 대번 한숨이 나왔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 장을 열었다. 그러나 내 각오는 대번, 저자의 부인이 쓴 서문에서부터 막히고 말았다. 이 책의 저자인 칼 세이건은 이미 1996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인은 이 책의 서문에서, 남편이 마지막으로 병원에 가던 날 들고 갔던 서류가방을 10년째 열어보지 못했다고 썼다. 10년을 열어보지 못하던 그 서류가방의 비밀 번호는 부인의 생일이었다고 한다.
그는 칼 세이건 같은 대단한 석학이 아니고 나 또한 그의 아내인 앤 드루얀 같은 유명인사가 아니다. 사실 이 유명하고 대단한 책을 읽어서 그중 얼마나 내가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최소한, 남편이 마지막으로 병원에 갈 때 들고 갔던 서류가방을 10년째 열어보지 못한 아내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해한다. 그것 하나만은 감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주 금요일은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날이었다. 늘 그랬던 건 아니고, 코로나로 외출이 쉽지 않게 된 이후로 그렇게 되었다. 우리는 열심히 네이버를 뒤지고 배민의 리뷰들을 뒤져 맛있어 보이는 가게들을 골라놓고 일주일에 하나씩 먹어보고 이 집이 다시 주문할만한 집인지 아닌지를 가렸다. 그렇게 추려낸 집들 중 그가 단연 좋아하던 한 우육탕 집이 있었다. 서울에 사는 것도 아닌데 배달 가능한 가까이에 이렇게 맛있는 가게가 있다니, 참 놀랍다고 그는 늘 말했었다. 이 집은 이렇게 시켜만 먹을 것이 아니라 가게에 가서 먹어봐야 하는데. 가게에 가서 금방 한 따뜻한 우육탕을 먹어보는 것은 우리의 많은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는 밥을 차려 먹는 일에 진심인 사람이었으므로 배달음식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배달 온 일회용 용기 그대로 뭔가를 먹는 걸 싫어했고 그래서 늘 미리 그릇을 준비해 놓았다가 배달 온 음식들을 마치 집에서 차린 음식들처럼 다 옮겨 담아서 먹곤 했고 덕분에 사진 리뷰를 올리면 예쁜 그릇에 옮겨 담아 사진을 찍어주셔서 감사하다는 가게 사장님들의 답글이 제법 자주 달렸었다. 그래서 갑작스레 내 곁을 떠나던 4월의 어느 금요일 아침에도 그는 그날 시켜먹을 음식을 옮겨 담을 그릇들을 전날 저녁에 다 미리 꺼내 놓았었다. 그리고 그의 계획에 의하면 그날 우리는 예의 그 우육탕을 시켜먹을 예정이었던 모양이다. 맛있는 것일수록 물리면 슬퍼지기 때문에 너무 자주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는데, 그날따라 먹고 싶어지기라도 했던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