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그의 49재 날이었다. 봉안당 측에서 준비해주시는 제사상 중에 하나를 골라 미리 주문해 두었다. 내 손으로 하나하나 음식을 해서 제사를 지냈어야 맞았겠지만 여러 가지 구차한 이유가 있어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시간은 아침 10시였다.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유독 그의 봉안당은 일찍 나설수록 가는 데 시간이 적게 걸리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미적거리다 나서면 두 시간 정도 걸리는데 아침 일찍 나서면 한 시간 반이면 충분했다. 그래서 집 청소를 간단히 해놓고 집을 나섰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차가 밀렸다. 버스 안에서 내내 발을 동동 굴렀다. 아슬아슬하게 5분 전쯤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제례실 안에는 이미 상이 다 차려져 있었다. 디스플레이 모니터에 띄워진 그의 지방(紙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는 전날 받은 버터크림빵을 꺼내 비닐을 벗기고 제사상 한 구석에 놓았다. 그가 떠나던 날 아침에 먹으려던 우육탕도 미리 준비했다가 가져오고 싶었지만 국도 아닌 면이라 여기까지 가져오면 면이 불어 엉망이 될 것 같아 그러지 못했다.
그는 참 어지간히나 복이 없는 사람이어서 떠날 때도 혼자였고 49제 또한 나 혼자 치러야 했다. 그의 49재를 준비하면서 나는 몇몇 주변 사람의 적나라한 밑바닥을 봤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그들과 손절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주(祭主)가 되어, 그의 제사상에 초를 켜고, 향을 올리고, 술을 따르고, 절을 하고, 밥을 탕국에 말아 수저를 꽂고 불을 끄고 문 밖으로 5분 간 자리를 피했다. 헛기침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 마지막으로 절을 올리고 초와 향을 껐다. 다른 음식들은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아 술만 한 모금 마셨다.
그걸로, 조촐하다는 말조차도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그의 49재는 끝났다.
제사를 마치고 나는 그의 봉안당에 가서 인사를 했다. 오빠 내가 오늘 이런 거 처음 해봐서 실수도 많이 하고 그런 것 같은데, 그냥 오빠가 예쁘게 봐줘. 내 마음 알잖아. 간략하게나마 어쨌든 남들 하는 건 다 치렀으니 거기 가서는 아프지 말고, 힘들지 말고, 남은 사람 너무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고 행복하라고, 봉안당에 갈 때마다 하는 말을 중얼중얼 되씹었다.
참 더할 나위 없이 날씨가 좋은 날이었다. 49재는 이승에 머물던 혼이 마지막 남은 업을 다 털어내고 좋은 곳으로 가는 날이라는데, 평소 날씨 운이 좋던 그가 떠나는 날답게 덥지도 습하지도 않은 좋은 날씨였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나는 그가 떠난 지 한 달 반 남짓만에 처음으로 배민을 켜서 예의 우육탕을 주문해 밥까지 말아가며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나만의 배웅은 일단락되었다.
그를 만나러 봉안당에 다닌 지 다섯 번 만에 나는 그의 앞에서 울지 않고 그 앞을 물러나오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 글을 쓰면서는 또 울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