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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Oct 15. 2022

누가 그래요, 카네이션이 노티 난다고

-186

메리골드의 이명은 '천수국'이다. 말 그대로 천일을 가는 꽃이라는 의미다. 물론 꺾어서 물에 꽂아 놓은 꽃이 천일을 간다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여하튼 상당히 오래가는 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지난번 사다 놓은 메리골드도 꽤 오래갔다. 기세를 봐서는 일주일쯤은 더 버티어줄 것 같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메리골드의 샛노란 꽃송이 위에 애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는 것을 발견하고는 기겁을 해 그 송이를 뽑아서 버렸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찜찜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그날 하루 내내 나는 그의 책상 근처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혹시나 또 벌레가 나오진 않았는지 눈을 커다랗게 뜨고 꽃을 쏘아보았다. 다행히 그날은 별 일 없이 넘겼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니 또 다른 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안 되겠다. 나는 그런 결론을 내리고, 며칠은 더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메리골드를 전부 버렸다. 그의 책상에 벌레 먹은 꽃을 놓아두고 싶지는 않았다.


몇 주 전 기승스레 비가 오던 날 용담을 사들고 돌아왔던 대형마트 안의 꽃집에 갔다. 단골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 스치듯 지나간 나를 기억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직원분은 웃는 얼굴로 지난번에 사 가신 용담은 예쁘게 잘 두고 보셨는지를 물었고 나는 거기서 허를 찔리고 말았다. 네. 같이 주신 유칼립투스랑 너무 잘 어울려서 한 열흘 아주 예쁘게 봤어요. 열흘 씩이나 보셨어요? 관리 정말로 열심히 하셨나 보다. 그런 대화를 나누며 나는 쇼케이스 안의 꽃들을 한참이나 기웃거렸다. 역시나 어딜 가나 그렇듯 장미가 많았다. 그러나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얇은 꽃잎이 몽글몽글하게 붙은 연한 살구색이 나는 작약 비슷한 꽃이었다. 저 꽃은 뭐냐는 질문에 내가 생각지도 못한 답이 돌아왔다. 카네이션이에요. 나도 모르게 엑 하는 소리를 내고 다시 꽃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카네이션이 저런 색깔도 있어요? 그럼요. 요즘 카네이션이 정말 예쁘게 잘 나와요. 컬러도 다양하고 모양도 아주 예쁘게 나오고요. 장미 식상하다고 일부러 카네이션 사 가시는 분들도 있으신걸요.


언제, 어느 꽃집에 가든 늘 있는 꽃이 몇 가지 있다. 장미, 안개꽃, 카네이션이다. 그동안 마땅한 꽃이 없어 무난한 장미를 사더라도 웬만하면 카네이션은 사지 않았다. 어버이날 어머니에게 선물하는 꽃이라는 인상도 너무 강했고, 빨간 꽃잎이 겹겹이 붙은 그 모양이 어쩐지 좀 노티 나게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눈앞에 피어있는 그 살구색 카네이션은 네가 어디 가서 나 같은 꽃을 본 적은 있느냐는 듯 의기양양하게 피어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그 살구색 카네이션을 사기로 했다. 딱 들어올 때 처음 눈이 가는 꽃을 사셔야 해요. 그래야 후회를 안 하시더라고요. 마치 버드나무 가치처럼 줄기가 낭창낭창 늘어지는, 파블로라는 유칼립투스 한 줄기를 덤으로 넣어주며 직원분은 그렇게 말했다. 이야 오빠, 요즘은 카네이션이 이렇게 예쁘게 나오기도 하나 보다고, 보라색도 있고 분홍색도 있던데 이 색깔이 제일 예쁜 것 같아서 이걸로 사 왔다고, 늘 하던 대로 그런 보고까지 마치고 카네이션을 꽂은 꽃병을 그의 책상에 갖다 놓았다. 


이번에 사 온 카네이션은 송이가 크고 굵어서, 그래서 그런지 가격도 살짝 비싸서 세 송이밖에 사지 못했다. 그러나 직원 분이 덤으로 넣어준 유칼립투스와 왁스플라워 한 가지와 같이 꽂아 놓으니 어설프나마 꽃꽂이 비슷한 걸 해놓은 느낌이기도 해서 또 나름의 뿌듯함이 있다. 이런 식으로, 그동안 보고도 못 번 척 지나치던 카네이션도 이렇게 꽂아놓으니 참 예쁘고 보기 좋구나 하는 사실을 배운다.


세상에 노티 나는 꽃 같은 건 없다. 노티 나는 마음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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