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당신에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Oct 21. 2022

미역국을 살 걸 그랬나

-191

이번 주 마트에 주문을 할 때 마지막까지 나를 망설이게 하던 항목이 하나 있었다. 레토르트 미역국이었다. 이걸 하나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주문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도 나는 그 사실을 고민했다. 안 살 거라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왕 살 거면 마트에서 사야 단돈 몇 백 원이라도 싸기 때문이다. 나는 미역국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미역국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이유라면 어느 정도는 뻔하다.


다음 주에는 내 생일이 있다.


올해 그의 생일에 그는 생일상을 받지 못했다. 그의 생일은 그의 삼우제 지내던 날과 겹쳤다. 그날도 발인하는 날 만큼은 아니나마 정신이 없었다. 오후 여섯 시까지 어디 엉덩이 붙이고 앉지도 못할 만큼 시달리다가, 나는 오후 늦게나 집에 돌아와 집 앞 편의점에서 산 레토르트 미역국에 밥을 한 그릇 말아먹는 것으로 그가 없는 그의 생일상을 대신했다. 사실 그날도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날 미역국을 먹는 것은 하나의 특정한 의무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던 걸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그의 생일 이야기고, 내 생일은 또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굳이 그날 미역국을 먹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미역국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혼자 살아남아 맞는 내 생일이 뭐가 그렇게 기쁘고 대단해서 미역국씩이나 먹으며 축하해야 하는 건지부터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평소 좋아하는 메뉴라면 그 핑계를 대고 사다 놓고 먹을 수라도 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닌 마당에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에 막혀 나는 실컷 다른 물건들을 다 골라 담아 놓고도 쉽사리 주문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미역국을 사지 않은 채 주문을 마쳤다.


몇 년 간 내 생일은 무슨 설이나 추석에나 보는 차례상 수준으로 거창했다. 한우로 끓인 미역국은 기본이고 잡채에 불고기에 내가 좋아하는 온갖 반찬들이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져 나왔었다. 그는 그 한 상을 준비하기 위해 10월 초부터 골머리를 싸맸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나 혼자 먹자고 그 짓을 할 수는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런 판국에 미역국 하나를 먹느냐 안 먹느냐가 뭐 그리 크게 차이가 날 것 같지도 않다. 그날도 봉안당에 다녀올 예정이니 정 무엇하면 미역국 라면이라도 하나 사서 끓여먹지 뭐.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생일날 미역국을 못 먹으면 인덕이 없다고 한다. 그 속설도 썩 맞는 말은 아닌 모양이다. 그간 그의 손에 얻어먹은 미역국이 몇 그릇인데, 이런 식으로 먼저 떠나버린 걸 보면. 아니, 어쩌면 그나마라도 먹어서, 지금까지라도 같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얼마 하지도 않는 미역국 한 팩 정도 그냥 같이 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한다. 그는 아마 좋은 소리를 하지 않을 테니까. 그동안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생일을 그렇게 막 먹고 보내냐고 그라면 분명히 싫은 소리를 할 테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년부터는 몰라도, 올해는 정말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러게 생일날 미역국 한 그릇 안 먹고 청승 떨고 있는 꼴을 안 보려면 그렇게 훌쩍 가지 말았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이별에도 등급이 있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