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슬프지 않은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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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그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에 관련해 나를 가장 슬프게 만드는 사실 중의 하나는 이 이별이 너무나 갑작스러웠다는 사실인 것 같다. 나는 그가 내게 한 마지막 말이 무엇인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내가 그에게 한 마지막 말이 무엇이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본 그의 마지막 얼굴이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붙잡고 있었을 그 작고 사소한 기억들은 그날 아침의 그 광폭하기까지 한 감정의 회오리에 휩쓸려 지워져 버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게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지금도 생각한다. 일주일만이라도, 사흘만이라도, 그게 안된다면 하루만이라도 이별을 먼저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먼저 알게 되는 것은 병원에서 소위 시한부 진단을 받을 때뿐이다. 그가 병상에 누워서 투병을 하던 끝에 떠났다면 나는 좀 더 쉽게 그를 보내줄 수 있었을까. 그가 완치가 불가능한, 혹은 확실치 않은 병으로 투병했다면 나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를 간호하고 돌볼 수 있었을까.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이런저런 경제적인 문제들이 제일 먼저 생겼을 테고,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내 얼굴에는 그런 걱정과 수심들이 뚜렷하게 떠올랐을 테고, 내 눈빛만 봐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았던 그는 자신의 처지에 더없이 고통스러웠을 테다. 그리고 그렇게 투병하던 끝에 그가 떠났다면 나는 지금처럼 순전한 슬픔과 그리움으로 그를 기억할 수 있었을까.


갑작스러운 이별이라니, 그렇다면 사고 같은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볼일이 있어 외출하면서 웃는 얼굴로 갔다 오겠다는 인사까지 하고 나간 사람이 차에 치인다든가 하는 일로 예기치 않게 생을 마감했고, 관할 경찰서 같은 곳에서 신원확인을 해달라고 전화를 받는다면. 그날 아침 자고 있는 줄 알았던 그를 흔들어 깨웠을 때, 이미 굳어지기 시작한 그의 뻣뻣한 몸을 처음 느꼈을 때의 그 가슴 철렁한 기억은 물론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그런 것을 난데없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 있는 모습을 마주하는 것과 감히 비교할 수 있을까. 그날 내내 나는 현장 확인을 위해 온 경찰들에게서, 응급구조사들에게서, 영안실 관계자들에게서 그래도 본인 집 본인 침대 위에서 부인 곁에서 떠난 것만으로도 복 받으신 분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엔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는 말들이었다. 그러나 두 달쯤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상담사 선생님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많은 노인 분들이 딱 일주일만 병원 신세를 지고, 자식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떠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그의 경우처럼 자던 중에, 컴퓨터의 전원이 꺼지듯 평화롭게 떠나는 것은 아무에게나 내려지는 축복이 아니기에 감히 바라지 못한다고. 2022년 4월 8일로 예비되었던 이별 자체를 바꿀 수 없는 거라면 그가 택한 방법은 가장 평화롭고도 신사적인 것이었다고. 어쩌면 정말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슬프지 않은 이별 따위는 세상에 없을 것이며, 설령 있다 한들 슬프지 않다는 그 사실 자체가 또 다른 슬픔일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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