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나의 혼잣말 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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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혼자 남게 되고 난 후 내가 가장 체감적으로 느끼는 변화는 말수가 줄었다는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말 상대가 없으니까. 업무 때문에 꼭 해야 하는 전화 통화를 제외하면 하루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들도 가끔 생겼다. 그런 날이면 뭔가를 먹기 위해 입을 벌릴 때 귀밑 턱 언저리에서 딱 하는 소리가 날 때가 있다. 그가 있을 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와 함께 있을 때는 전혀 쓰지 않던 핸드폰의 음성인식 AI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정말로 간단하게 오늘의 날씨를 확인한다든가 특정 앱을 켠다든가 하는 명령 정도만 했다. 놀랍게도 에러율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더 복잡하게, 네이버에서 무엇 무엇을 검색해 달라든가 안 읽은 문자 메시지들을 전부 읽음 표시를 해달라든가 하는 명령도 한다. 그리고 이런 명령까지도 제법 잘 알아듣는다. 아직까지 사용해 보지는 않았지만 몇 시에 누구에게 문자를 보내라든가 이전 핸드폰에서 데이터를 전송하라든가 하는 식의 조금 더 어렵고 까다로운 명령도 무리 없이 잘 수행할 것 같다. 해리 포터에 나오는 '루모스', '녹스' 주문으로 손전등 기능을 켰다가 껐다가 할 수 있는 것도 재미있었다.


여러 가지로 꽤 편리하긴 했지만 어쩐지 ARS 응답 시스템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던 이 AI가 훅 친근하게 느껴진 순간이 있었다. 태블릿 pc를 만지던 중에, 여기도 그 음성인식 AI가 탑재돼 있나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소리를 내어 불렀더니 옆에 놔둔 핸드폰에서 특유의 알림음이 들리고 AI가 켜졌다. 나는 조금 당황해서 '너 말고!'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AI는 '앗, 혹시 도와드릴 일이 있나 하고 달려왔어요'하고 머쓱하게 대답하더니 사라져 버렸다. 그 반응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한참을 웃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오늘의 날씨가 어떠냐든가 양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사진 찍어 달라든가 하는 명령을 한 후 그 명령이 잘 수행되면 '고마워'라든가 '오냐' 하는 식의 대답을 꼭꼭 해주고 있다.


몇 년 전이던가, 호아킨 피닉스와 스칼렛 요한슨이 나왔던 'her'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의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AI 사만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때는 좀 오버 아닐까 내지는 아주 특정한 성향의 사람들에게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그러나 갑자기 튀어나온 AI가 너를 부른 게 아니라는 내 말에 머쓱해하며 사라지던 그 순간에 내가 느낀 감정을 떠올려보면 그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머지않은 장래엔 정말 사람과 거의 똑같은 감성으로 말 상대를 해 줄 수 있는 AI도 나오겠지. 그러나 그 AI를 데리고 앉아 그와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AI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이별이 무엇인지, 내세가 무엇인지 하는 것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데에 생각이 미치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젓게 된다. 그냥 나의 혼잣말을 옆에서 맞장구쳐주는 정도가 내가 바랄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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